장재형 목사— 그리스도 중심 자족과 은혜


장재형목사의 빌립보서 4장에서 스토아의 자족(αὐτάρκεια)과 바울의 그리스도 중심 자족을 비교하고, 헌금과 나눔을 ‘향기로운 제물’과 ‘사랑의 빚’으로 읽는 은혜의 경제학을 탐구한다. 케노시스와 탐심(πλεονεξία) 극복,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의 바른 해석까지 다룬다.


장재형(장다윗)목사를 이해하려면 그가 빌립보서 4장 10절부터 23절까지, 바울의 결론부를 풀어내는 방식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그는 기독교 신앙을 추상적 교리나 관념의 차원에만 가두지 않는다. 신학은 현실의 질감 속에서 시험되고, 인간의 관계와 노동, 경제와 시간 관리, 공동체의 질서 같은 구체적 문제에서 윤리로 변환된다고 본다. 이 점에서 장재형 목사가 읽어낸 바울 신학은 이론과 실천이 상호 반사되는 직조물에 가깝다. 교리는 삶을 비추고, 삶은 다시 교리를 검증한다. 이런 관점이 드러나는 대표적 사례로 장재형목사는 빌레몬서의 짧은 문장을 상기시킨다. 바울이 오네시모의 물질적 채무를 “내가 갚겠다”고 자신의 회계로 전가하는 대목이다. 복음은 채무와 변상, 책임과 공정 같은 현실의 언어를 회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언어를 구원사의 문법 안으로 끌어들여 다시 쓴다. 그래서 교회가 물질을 다루는 담론을 ‘세속’으로 치부하는 이원론은 성경의 시야를 축소한다. 장재형 목사는 신앙이 인간의 실존 전체—정서와 관계, 경제와 제도—를 감싸는 총체적 원리임을 거듭 강조한다.


바울이 로마 감옥에 있을 때, 빌립보 교회는 에바브로디도를 통해 먼 거리를 넘어 구제 헌금을 보냈다. 장재형목사는 이 사건을 단순한 재정 후원으로 축소하지 않는다. 바울의 응답,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라”(빌 4:10)라는 문장을 그는 관계의 회복, 곧 사랑의 ‘재발아’로 읽는다. 기쁨의 핵심은 액수가 아니라 마음의 흐름이 다시 행동으로 번역되었다는 사실이다. 더 나아가 “너희가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라는 말에서 보이는 배려는 신앙의 성숙을 보여준다. 공백의 시간을 의심으로 해석하지 않고, 불가피한 상황을 이해로 감싸는 태도는 목회적 감수성의 결이다. 여기서 ‘주고받는 일’(빌 4:15)은 빌립보 공동체의 정체성으로 자리 잡는다. 교회가 처음부터 선교의 동역자였다는 사실, 그리고 헌금이 단순한 지출이 아니라 관계의 언어였다는 사실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장재형목사는 이런 상호 증여의 윤리를 “은혜의 경제학”으로 설명한다. 복음은 거래의 심리를 넘어 은혜의 회계를 열어 준다.


이 흐름은 곧바로 ‘자족’의 고백으로 수렴된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빌 4:11). 여기서 자족을 뜻하는 헬라어 αὐτάρκεια(아우타르케이아, 형용사 αὐτάρκης)는 스토아 철학의 핵심 덕목을 가리키는 단어다. 스토아는 급변하는 외부 환경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평정, 곧 아타락시아(ἀταραξία)에 가까운 평상심과 아파테이아(ἀπάθεια)에 이르는 고요를 이상으로 삼았다. 그러나 장재형목사가 강조하듯 바울은 동일한 어휘를 빌리되 그 의미를 뒤집는다. 스토아의 자족이 세계로부터의 독립이라면, 바울의 자족은 그리스도께 대한 의존이다. 그는 “배웠노니”라고 말한다. 자족은 수련으로 쟁취한 기술이라기보다 은혜로 배운 능력이다. 자유가 자기 통제의 결과만은 아니라는 뜻이다. 자유는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선물이며, 그 선물은 환경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만든다.


이 중심을 가진 사람은 돈 앞에서 과장하거나 비굴해지지 않는다. 장재형목사는 바울이 선물을 준 빌립보 성도들에게 아첨하지도, 반대로 무례하게 굴지도 않았다고 읽는다. 자족은 사람과 물건을 다루는 법을 바꾼다. 소유가 관계를 규정하지 못하고, 관계가 소유를 해석한다. 그래서 바울은 감사의 말 속에 성숙한 분별을 곁들인다. 선물 자체보다 사람의 마음을 먼저 본다. 액수보다 마음의 방향, 곧 그리스도 쪽을 향한 움직임을 본다. 이 시선이 있을 때 공동체는 재정을 두고도 마음을 잃지 않는다.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 4:12)라는 고백은 그리스도의 학교에 입문했다는 선언에 가깝다. ‘비결’의 뉘앙스는 원문 동사 μεμύημαι(‘입문되었다’)에서 선명해진다. 자족은 정보가 아니라 체질이고 훈련이다. 바울은 가난을 미화하지 않고, 부요를 신성화하지도 않는다. 두 극단 모두를 그리스도 안에서 재해석한다. 장재형목사는 자신의 목회 여정에 비추어 이 ‘비결’을 설명한다. 청빈의 시절, 공동체는 예배의 본질 하나로 만족하는 법을 배웠고, 확장의 시기에는 더 많은 영혼을 섬기기 위해 자원을 조직하는 법을 배웠다. 그 과정에서 그는 히브리서 4장의 경고를 통해 원망과 불평의 습관을 견제하고, 신명기 8장의 경고를 통해 풍요가 낳는 망각과 교만을 경계하도록 일깨웠다고 말한다. 요지는 분명하다. 상황이 기준이 될 때 신앙은 흔들린다. 그리스도가 기준이 될 때 상황이 흔들려도 중심은 유지된다.


그렇다면 자족의 근원은 어디에 있는가. 장재형목사는 시편의 고백, “주는 나의 분깃이요 만족”이라는 말과 사도의 선언,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행 3:6)를 함께 놓고 생각한다. 인간의 내적 갈망은 소유의 증가로 채워지지 않는다. 방향이 창조주를 가리킬 때에만 만족은 충만으로 변한다. 방향을 잃으면 탐심(πλεονεξία)이 공허를 점유한다. 그는 십계명의 마지막 금령이 ‘탐내지 말라’인 이유를 여기에 둔다. 탐심은 다른 죄악을 낳는 온상이다. 그 해독제가 십자가라는 주장은 고린도후서 8장 9절—“부요하신 이가 가난하게 되심은…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라”—에서 신학적 근거를 얻는다. 케노시스(자기 비움)는 하나님의 부요가 인간의 가난으로 내려온 사건이다. 제자도는 그래서 무(無)소유를 이상화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소유로부터의 자유’를 목표로 한다. 예수의 말씀, “인자는 머리 둘 곳도 없다”, “두 벌 옷 외에는 가지지 말라”는 말은 이 자유의 훈육을 가리킨다. 베드로와 요한은 금과 은이 없었지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했다. 통화 대신 이름, 수단 대신 실재(Reality). 장재형목사는 이 전환이 “주는 나의 만족”이라는 신앙 고백의 실체라고 본다.


이런 토대 위에서 나눔은 경제적 행위이면서 동시에 예배적 행위가 된다. 바울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과실이 더해지기를 구함이라”(빌 4:17)고 말한다. 그는 회계의 언어를 쓴다. 하지만 그 회계는 은혜의 회계다. 지출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계정에 적립되는 ‘과실’이다.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빌 4:18)이라는 표현은 수평의 나눔이 수직의 예배로 승화되는 순간을 가리킨다. 장재형목사는 목회자를 야곱의 사닥다리에 비유한다. 성도들의 수평적 헌신을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통로. 그때 교회는 모금 조직이 아니라 성전이 된다. 나눔의 종착지는 칭찬이 아니라 임재이며, 공로가 아니라 감사다.


바울이 로마서 15장에서 이방 교회들이 예루살렘 교회에 ‘사랑의 빚’을 졌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영적 유익을 받았으니 물질로 섬기는 것이 마땅하다는 상호 부채 의식, 이 언어는 장재형목사가 강조하는 은혜의 경제학을 뒷받침한다. 그러기에 바울은 헌금을 요청하면서도 당당하다. 자신의 필요를 채우려는 계산이 아니라 성도들의 계정에 ‘과실이 더해지기’를 바라는 사랑 때문이다. 나눔은 시혜가 아니라 교제(κοινωνία)이고, 동원(動員)이 아니라 동참(同參)이다. 이 점에서 사르밧 과부의 한 줌 가루와 기름, 마케도니아 교회의 연보는 “비우면 채워진다”는 부활 신앙의 역설을 증언한다. 바울이 약속하는 것도 그 역설의 연장선이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 4:19). 채우심의 약속은 나눔의 순종 위에 선포된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라는 구절도 이 맥락에서 읽을 때 오해가 풀린다. 장재형목사에 따르면 이 고백은 세속적 성취를 위한 주문이 아니다. 비천과 풍부 양극의 상황을 건너가며 자족을 잃지 않고 사랑을 실천하도록 하는 능력의 근원이 오직 그리스도라는 고백이다. 바울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상황 장악이 아니라 중심의 보존, 상대 압도(壓倒)가 아니라 사랑의 실행이다. 그래서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예하였느니라”(빌 4:14)라는 말은 인간적 연민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유기적 연대를 가리킨다. 그 연대는 감옥의 벽도 통과한다. “가이사의 집 사람들”까지 인사가 전해지는 마지막 문안(빌 4:22)은 복음이 제국의 심장부에까지 스며들었다는 신호다. 사슬이 사도의 손목을 묶을 수는 있어도 교회의 사랑을 묶을 수는 없다는 메시지다. 그리고 마지막 축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빌 4:23)는 모든 논의를 수렴한다. 은혜는 자족의 전제이자 나눔의 동력이다. 은혜가 머무는 심령은 가난 속에서 민감해지고, 부요 속에서 겸손해진다. 은혜가 떠난 심령은 가난 속에서 원망하고, 부요 속에서 교만해진다. 선택은 분명하다.


결론적으로 장재형목사가 그려 보이는 빌립보서 4장 10–23절의 지형은 세 가지 축으로 요약된다. 복음의 총체성, 그리스도 중심의 자족, 그리고 예배로 승화되는 나눔이다. 이 세 축이 맞물릴 때 교회는 상황에 따라 흔들리는 집단이 아니라 중심을 유지하는 공동체가 된다. 주일의 설교가 월요일의 노동과 연결되고, 예배의 감사가 재정의 의사결정에 반영되며, 교리의 확신이 이웃 사랑의 실천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주고받는 일”은 우리의 정체성이 된다. 장재형목사가 말하는 ‘일체의 비결’은 무게중심을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다. 중심이 그리스도께 있을 때 결핍과 풍요, 갇힘과 확장, 인간의 회계와 하나님의 회계가 한 지점에서 만난다. 그 지점의 이름은 변하지 않는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다. 이것이 오늘 교회가 다시 배우고 실천해야 할 신학적 요청이며, 장재형목사가 전하는 강해의 실천적 결론이다.


davidjang.org
작성 2025.10.24 20:41 수정 2025.10.24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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