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어족이 되어 보니까, 정말 행복하던가요?

돈이 나를 위해 일하는 동안 나는 무엇을 하지?



주식 투자(이미지 freepik.com)


함성연에서 함께 인문학 공부를 했던 문우 중에는 파이어족이 한 분 있습니다. 주1)
P는 입시학원 강사를 하면서 그야말로 영혼을 갈아 넣으면서 열성적으로 뛴 결과 50대 초반에 파이어족이 될 수 있었답니다.
그는 수도권 근교에 전원주택을 짓고 반려견과 자유로운 삶을 삽니다.
게다가 틈틈이 시간을 쪼개어 인문학 공부, 읽고 쓰기, 수영, 트래킹 등 균형적인 생활을 하고 있기에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합니다.

파이어족이 된 지 3년이 조금 넘었을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P가 이런 고백을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주2)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하루를 채워 놨는데, 그것이 하기 싫을 때 오히려 더 공허해지고 그 자리를 불안이 채우더라고요. 좋음과 싫음의 극과 극을 오가니 마음의 출렁거림이 큽니다.”
P는 스스로 해답도 찾았습니다. 아마도 평소 인문학 공부에서 축적한 힘이겠지요.
“일정 부분 의무를 감당하는 시간이 오히려 불안으로부터 흔들리지 않게 하는 지주대가 될 것 같아요.”
그는 자신이 제일 잘하는 학원강사 경력을 지역사회에 재능 기부하는 것을 의무로 여기겠다는 계획도 함께 말했습니다.
저는 P의 말을 듣고서 파이어족도 나름대로 열심히 살려고 애쓰고 있지만, 파이어족이라고 불안과 공허라는 인간적 취약성에서는 벗어나지 못하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지요.

한때 동학개미운동의 선봉장, 가치투자의 전도사라는 별명으로 주목받았던 존 리(John Lee)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이분을 전봉준에 빗대어 ‘존봉준’이라고 부르며, 그의 이야기에 환호했지요.
존 리가 남긴 명언에는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커피 사먹을 돈을 아껴서 매달 조금씩이라도 주식에 투자하라, 자가용을 사는 순간 가난의 길로 들어가는 것이다, 사교육비에 쓸 돈이 있으면 자식에게 주식을 사 줘라.’

하지만 제가 특별히 기억하는 명언(?)도 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돈이 당신을 위해 일하게 하라.”
아마도 이 선정적인 프로파간다가 그를 연예인급 인사로 만들어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얼마나 멋진 말이던가요. 이시대의 복음이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이 말은 허세가 조금도 섞이지 않은 자본주의사회의 정수, 에센스이기도 합니다.
분명 합당한 말입니다.

그런데도 저는 이 지당한 말이 수긍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갖는 의문은 이것입니다.
‘그런데 말이야. 돈이 나를 위해 일하는 동안 도대체 나는 무엇을 하라는 것이지?’

발화자인 존 리가 이 물음에 답했는지는 모르지만, 저는 그를 포함하여 누구의 설명도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생각해보니 의문이 없을 만도 하더군요.
‘돈이 일하게 하라’라는 말에는 돈만 있으면 할 일은 많아, 돈 있으면 온갖 걱정은 부질없어, 돈으로 안 되는 일이 있니?와 같은 황금만능주의적 환상이 압축되어 있었으니까요.
그러니 돈이 일하는 동안 나는 무엇을 하지? 라는 걱정은 애초부터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렇기만 할까요?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3)
“삶은 진자처럼 고통과 무료함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그는 가난한 사람은 궁핍과 싸우지만, 부유한 사람은 무료함과 싸운다고 말합니다.
즉 부자는 돈을 어떻게 사용할지 몰라 삶의 권태를 느낀다는 것이지요.

나중에 다시 알아볼 기회가 있겠지만, 돈은 본질적으로 교환가치에 효용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돈으로 무엇을 교환할지 모르거나, 교환물품의 가짓수가 빈약할수록 돈의 효용가치는 떨어지게 됩니다.
결국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돈으로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습니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개인의 귀책사유로 인해 불가능한 일입니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돈은 돈을 갖고 있는 사람의 의식만큼만 사용 가능합니다.
이것이 불행한 사람에게 돈이 별반 도움을 주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철학적 접근이 아니더라도 앞의 P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파이어족으로 2년까지는 더할 나위 없이 자유로웠는데, 그 후부터 점점 불안이 자라나기 시작했다는 P의 말은 의미심장합니다.
자기관리와 균형된 삶을 위해 인문학 공부와 읽고 쓰기, 운동, 취미활동, 봉사활동을 적절히 안배하였던 P조차도 삶의 균열이 생기는 사실에서 우리는 환상을 버리고 좀 더 현실적으로 삶을 이해하려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파이어족도 좋고, 노후 준비도 중요합니다.
이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단지 좋은 삶도 함께 준비해야 한다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좋은 삶은 ‘배우고, 사유하고, 오감으로 체험할 때’라야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인문학 공부를 통해 인간의 본질과 인생의 궤적을 배우고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읽고 쓰기를 통해 사유하는 힘을 기르고, 자기다운 삶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행복은 관계속에서 체험되는 것이기에 우리는 '나-너'의 관계(주4)를 회복해야 합니다.  


주1) 정예서함께성장인문학연구원(함성연). 2009년 설립된 어른의 학당으로 '치유와 코칭의 100일 글쓰기'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인문학 연구 커뮤니티로, 동서양 철학 및 심리서·사회서를 통한 '나를 세우는 인문의 숲' '나를세우는 네 기둥 대학원'을 등을 함께 진행하고 있다. 홈페이지 https://cafe.naver.com/east47
주2) https://www.kpeoplefocus.co.kr/news/877722
주3)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강용수 지음
주4) 나와 너. 마르틴 부버 지음(김천배 역). 마르틴 부버는 '나-너'는 짝말이라서 어느 하나가 없이는 다른 하나도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한다.


K People Focus 김황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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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황종 칼럼니스트 기자 yc1401@naver.com
작성 2025.10.26 22:38 수정 2025.10.26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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