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풀 같은 웃음


이동용 (수필가/철학자)




언젠가 TV에서 한강이 의자에 앉아 마이크를 들고 말을 하던 장면을 본 적이 있습니다. 


들릴까 말까, 그녀의 음성은 거의 공기를 채우지 못한 채 빠져 나오고 있었습니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 하고 귀를 쫑긋하고 들어야 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기억나는 말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냥 그때 그 순간의 차분한 분위기만 느낌으로 남아 있을 뿐입니다.


그러다가 〈목소리〉에 도달했습니다. 《내 여자의 열매》 중 〈아홉 개의 이야기〉, 그 중 일곱 번째 이야기였습니다. 


“남자가 여자의 목소리를 좋아한다고, 연필 같아서 그렇다고 했을 때 여자는 강아지풀 같은 웃음을 터뜨렸다.” 


순간, 작가의 기묘했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은, 미소조차 없는, 신비로운 그 표정이 기억 속에 나타났습니다.


‘깊은 밤 종이 위에서 사각거리는 연필 소리 같다’는 말은 조용한 작가 한강의 자기 연출이라고 할까요. 


그녀는 왠지 모르게 나의 어머니를 많이 닮은 듯합니다. 


말로는 해결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는 듯이, 나의 어머니는 정말 답답할 정도로 말이 없었습니다.


방학 때였나, 아들이 보고 싶어서 시골에서 따로 시간을 내서 올라왔나, 이유는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버스 정류장으로 치면 서너 정거장의 거리를 어머니와 함께 걸어서 집에서 출발하여 화계사로 향한 적이 있습니다. 절에 가고 싶다고 해서 간 것입니다.


화창했던 어느 날 빛의 화살 하나가 눈에 꽂혔습니다. 어머니의 구두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대학생 때였으니 어머니는 예순을 넘긴 시점이었습니다. 지금의 내 나이 즈음이었습니다. 


먼지 하나 묻지 않은, 새 구두가 보였습니다. 


집에 거의 도착했을 때가 되어서는 다리를 저는 듯도 했습니다. 택시를 탈 걸 그랬나, 하고 후회했던 순간이 햇살처럼 기억납니다.


어머니는 발이 아프다는 말을 안 했습니다. 물론 기쁘다는 말도 안 했습니다. 나의 기억 속에 각인되어 있는 어머니의 얼굴은 그저 먼 곳을 향한 멍한 표정 그 자체뿐입니다. 


내가 태어나기 이 년 전쯤 어머니는 사산아를 낳았다고 들었습니다. 그때도 아들이었다고 했습니다. 그 사건 때문에 막내형과 나 사이에는 사 년이라는 긴 시간이 끼어들고 말았습니다.


그때 그 상처 때문일까, 막내형을 낳았을 때까지의 ‘강아지풀 같은 웃음’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의 어린 시절을 담아놓은 사진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 사진들이 사라진 것일 수도, 잃어버린 것일 수도 있습니다. 


남겨진 몇 장의 사진들에서 발견한 것은 나와 어머니가 함께 얼굴을 맞대고 있는 사진이 단 한 장도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제 이 나이가 되고 나니 어머니의 마음이, 여자의 내면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지금 이 순간, 그런 쪽으로 나의 눈을 뜨게 해 준 이가 있다면 한강을 꼽고 싶습니다. 그녀는 참으로 예민하고 섬세하고 여린 여자 같습니다. 말로 드러내지 않으며, 말없이 보내는 시간, 그 인식의 과정은 글의 형식 속에서 강물처럼 흘러갑니다. 


문장 하나 읽고 허공 한번 바라보고, 병아리가 모이를 쪼아 먹듯이 문장을 하나씩 꼭꼭 씹어 맛을 본 후 삼키고 있습니다.


“나무들이 바라보는 쪽은 언제나 햇빛이 드는 쪽이다.” 


앞서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햇빛이 되기도 하고 나무가 되기도 했습니다.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천천히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폴론의 화살을 심장으로 받아내려는 의도로 글을 읽었습니다. 고통이 전하는 전율을 느꼈습니다. 그 느낌이 설렘의 형식으로 오래 지속되기를 바라며 글을 응시했습니다.


책 속에 담긴 이야기들을 햇빛을 향해 펼친 잎사귀처럼 온몸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빛을 모아 만든 몸이 더욱 건강해지기를 바라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행간을 읽어가는 시선은 눈이 부셔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좋기만 했습니다. 환한 빛이 있어 좋았습니다.

작성 2025.10.27 09:46 수정 2025.11.10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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