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 숨이 막히지 않았다

이동용 (수필가/철학자)




엇? 그녀도 나랑 비슷한 꿈을 꾸네! 


이런 말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공감을 지나 정감까지 느껴졌습니다. 


《내 여자의 열매》에서 마지막 단편 〈철길을 흐르는 강〉에 이르렀을 때, 강과 길과 새떼와 햇빛이 연결되는 수많은 연결고리들을 관찰하고 있던 때였습니다.


이제 정말 몇 장 안 남은 것 같았습니다.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 그 끝에 가면 무엇을 만날 것인가? 궁금해 하면서도 차분하려고 애를 씁니다. 


서둘러서 해결될 일이라면 서두르겠지만, 인생이란 시간 속에서는 서두를수록 하고 싶은 것은 요원해지는 꼴을 수도 없이 봐 왔기 때문에 그저 가만히 내버려둡니다. 그러고는 치열하게 묵상을 거듭합니다.


기억의 강물은 망각의 강물과 반대로 흘러갑니다. 기억은 다른 방식으로 흐를 뿐입니다. 기억은 기억함으로써만 실현됩니다. 이것만 기억하면 됩니다. 


수면 위에 비친 영상을 가만히 들여다보듯이 그렇게 원하는 사물을 응시하면 됩니다. 눈을 감거나 외면하면 안 됩니다.


때로는 숨이 막히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참으면 숨이 쉬어진다는 느낌이 은총의 순간처럼 다가옵니다. 


참고 견디는 자에게 주어지는 인식의 순간이 조용히 찾아옵니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태복음 24:13) 즐겨 묵상하는 구절입니다. 힘들 때마다 나의 정신을 수면 위로 끌고 올라가 준 쇠사슬 같은 구절입니다.


쇼펜하우어를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은 ‘참고 견디라’는 말의 진의입니다. ‘가만히 있으라’는 그 말의 본뜻입니다. 


수면 위의 영상은 건드리면 파괴되고 맙니다. 그 영상을 바라보며 인식을 얻으려면 스스로 그것을 건드리는 그런 실수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무소유의 사랑이라고 할까요. 차분히 기다리면서 깨달음을 얻는 그런 지혜라고 할까요.


‘까마득한 날’에서 시작하여 ‘천고의 뒤’로 이어지는 이육사의 시간, 그의 〈광야〉를 관통하는 질긴 시간이 햇빛처럼 생각 속에 빗금을 칩니다. 먼 곳에서 출발한 번개가 대지에 닿습니다. 


한강의 글 속에서 익어가는 열매도 이육사의 광야를 지나쳐 치열하게 등장하는 초인도 다 같은 형식 속에서 합일을 이룹니다. 서로가 곁을 내주며 동행을 자처합니다.


“이상하게 숨이 막히지 않았다.” 


아침에 이 구절을 읽으며 또 다시 독서를 멈추었습니다. 멈추면서 보내는 시간이 정오를 지나가고 있습니다. 생각은 지속되고 있었지만 몸은 거의 정지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눈은 뜨고 있었지만 바깥의 현상은 상관이 없었습니다. 


부처가 연꽃 자세로 앉아 있듯이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고 말하면 과장된 표현이 될까요.


“물살이 그녀의 몸을 덮쳤다. 거품 위로 몸뚱이가 치솟았다. 옥색의 물결이 코로, 귀로, 눈으로 흘러들었다.” 그런 다음 이 문장이 등장했습니다. “이상하게 숨이 막히지 않았다.” 


숨을 쉴 수 있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심연 속의 길고 길었던 오름의 과정을 견뎌낸 정신이 수면 위로 머리를 내놓으며 들숨과 날숨으로 거친 호흡을 해대는 쾌감을 느꼈습니다.


기원전 335년,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을 들고 아테네로 귀환했습니다. 그는 엘레오스와 포보스를 견뎌낸 정신이 카타르시스를 경험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깨달음은 참고 견뎌낸 자만이 얻을 수 있습니다. 깨달음은 또 다른 깨달음과 연결되어 함께 이어집니다.


지금 당장, 당신은 무엇을 참고 있습니까? 


지금 이 순간, 당신은 무엇을 견디고 있습니까? 


‘어렵다, 힘들다’고 말하는 그것, 그것을 간절하게 붙들고 치열하게 응시하며 ‘시간 보내기’를 해야 합니다. 그렇게 보내진 시간들이 모이고 모여 당신의 인생이라 불릴 것입니다.


알고 보니,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였습니다. 


결국에는 그 순간을 이토록 오랫동안 함께 했던 것입니다. 숨이 막히지 않는 체험을 하면서, 함께 보낸 시간이 영화처럼 진행되었습니다.


작성 2025.11.03 09:27 수정 2025.11.05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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