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하지의 영화 리터러시>실낙원

-박찬욱의 <어쩔수가없다>



어쩔수가없다01


노동의 종말이 예견된다. 갑자기 AI가 등장했고, 공장에서 자동차를 조립하던 로봇이 일상생활로 들어왔다. 내년부터 가정용 로봇이 판매를 시작할 예정이고 AI를 넘어 AGI(인공 일반 지능)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예상된다. AGI 시대에는 대부분의 직업이 로봇과 AGI로 대체될 예정이며 이는 산업혁명 이후 가장 큰 변화가 될 것이다. 

이제 인간은 노동으로 경제적 가치를 생산할 수 없다. 마르크스가 주장했던 노동 가치는 노동력의 생산 시간이 0에 수렴하게 되어 잉여가치에 의해 잠식된다. 그래서 상품 가치는 노동시간 대신 자본가에 의한 임의 판단과 알고리즘 연산으로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인간은 노동으로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던 존재가 아니라, 알고리즘이 남긴 ‘여백’ 속에서 부유하는 존재가 된다. 이것이 인류에게 낙원의 도래인지, 혹은 비극적 상실인지 아직 누구도 확답할 수 없다. 다만 인간은 이 변화 앞에서 _어쩔 수 없이_ 수용의 자세를 강요당한다.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는 이러한 시대 변화를 정면에서 포착한 첫 한국 영화에 가깝다. 이 작품은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1997년 소설 <액스>에 기반한다. 박찬욱 감독은 이 소설을 접한 후 16년간 준비해 왔다고 밝혔다. 만약 박찬욱 감독이 이 작품을 기획하던 당시에 만들어졌더라면 꽤 다른 작품이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에는 AI의 등장이나 노동의 종말이 거론되던 시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자본주의 경쟁의 폭력성만을 비판하는 것에 그쳤을 것이다. 


어쩔수가없다02


25년간 제지회사에 다닌 만수는 번듯한 집과 아름다운 아내, 두 자식을 둔 가장이다. 회사에서 준 장어를 정원에서 구워 먹으며 그는 가장으로써 모든 걸 다 이룬 듯 보인다. 그야말로 중산층이 바라는 이상적인 낙원에서의 삶이다. 그들에게 비치는 찬란한 햇빛은 신의 축복이 내린 은혜이다. 하지만 뱀과 유사한 장어를 먹은 만수는 해고를 당함으로써 낙원에서 추방당하게 된다. 아담과 하와가 뱀의 유혹에 빠져 에덴동산이라는 낙원에서 추방당하게 되는 것과 유사하다. 단지 다른 점이 있다면 만수가 태양 제지에서 해고당함으로써 노동을 상실하게 되는 것과 반대로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하고 나서야 노동을 시작하게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이 낙원의 조건이라면 창세기 신화에서 노동은 낙원의 상실을 뜻한다. 그렇다면 만수가 따먹은 선악과나무의 열매는 무엇이었을까?


어쩔수가없다03


이 영화에서 가장 큰 의구심은 만수의 살해 동기이다. 처음에 만수는 자신의 재취업을 위해 자신의 경쟁자들을 제거하는 걸로 보인다. '파피루스'라는 회사에 입사 지원을 한 구범모와 고시조는 1차와 2차 합격자였고 만수는 탈락자였다. 이 정보는 나중에 형사들이 알려준 사실로, 살해 시점에서 만수는 알 수 없는 정보였다. 그리고 마지막 희생자였던 최선출은 '문제지'라는 회사의 작업반장으로 만수가 차지하고 싶은 자리의 대상자였지만 그가 제거된다고 해서 만수가 그 자리에 가게 된다는 보장은 없다. 왜냐하면 취업이라는 건 성적순으로 순위를 매겨 차례대로 되진 않기 때문이다. 

만수는 이미 상실을 경험한 적이 있다. 어릴 적 아버지의 죽음과 집안의 몰락은 그의 인생에서 크나큰 상처로 자리 잡았을 것이다. 인생의 밑바닥에서 출발한 그는 비록 대학을 나오진 않았지만, 제지회사에 들어가 25년의 세월을 바치고 상까지 받은 제지 기술자의 자리에 오른다. 자신이 최고여야 할 필요는 없지만 자신의 낙원을 잃게 된다는 상실의 감정은 자신에 대한 부정과 동시에 경쟁자에 대한 원한으로 발전한다. 이제 햇빛은 만수의 눈을 부시게 만드는 방해 요소일 뿐이다. 만수가 먹게 되는 선악과나무의 열매는 경쟁자에 대한 살인이라는 욕구를 받아들인 것으로 볼 수 있다. 그의 살인은 경쟁자를 죽이는 행위가 아니라, 오래된 생산양식에 대한 애착이 자신을 파괴하는 과정이다.   자신이 심는 사과나무는 자신이 죽인 고시조의 시신과 아들이 훔친 아이폰이 자양분이 되어 자라게 된다. 나뭇잎이 다 떨어지는 가을에 심게 된 이 나무는 이곳이 더 이상 그들이 원하던 낙원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상징이다. 

그가 용의자가 아닌 피해 대상자로서 살인 혐의에서 벗어난 것은 범죄의 처벌을 바라는 관객의 도덕적 결말을 배신한다. 또한 살인에 능숙해짐으로써 아들을 절도 혐의에서 구해내고 처가에 보냈던 개들을 찾아오게 됨으로써 가장의 역할을 회복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이 결말은 전적으로 박찬욱 특유의 ‘비틀린 구원’의 문법이다. 그의 정원은 이미 더러운 ‘죽음의 장소’이며, 이 가족은 범죄의 공범이 된 집단이다. 윤리적 세계는 파괴되었지만, 경제적·가부장적 구조만은 되살아난 모순적인 낙원이다. 이 지점에서 영화의 제목 <어쩔수가없다>는 강력한 냉소를 드러낸다. 만수의 선택이 옳거나 정당해서가 아니라, 그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시대의 잔혹함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어쩔수가없다04


사실 만수가 실업자가 된 이유는 외국계 회사의 합병에 의한 구조조정과 종이로 대표되는 아날로그 시대가 끝났기 때문이다. 영국의 19세기 러다이트 운동이 일자리를 빼앗는 기계를 파괴하는 운동이었다면 만수의 적은 외국계 기업과 디지털 기기들이어야 한다. 이들과 맞서 싸우기 위해 노조를 결성하여 파업하거나 종이 사용을 권장하는 캠페인이라도 벌여야 한다. 하지만 만수는 자신의 경쟁자들을 제거함으로써 이런 시도들이 의미가 없음을 보여준다. 노동자 동료들을 위해 외국계 회사의 경영자들을 설득하려 했던 만수는 자신이 꿈꾸던 '문제지'에 들어가 노동자들을 정리하는 관리자가 되고 AI와 로봇을 관리하며 습관적으로 몽둥이를 대고 종이에 두들기지만, 그 자체는 실제 노동이 아니라 노동의 시뮬라크르이며 그는 이미 노동자로서 죽은 존재이다. 

이제 만수의 시대는 모가지 되었다. 종이 이력서를 쓰는 세대, LP를 듣는 세대는 과거가 되어가고, 심지어 태블릿으로 넷플릭스를 보는 시원조차 구시대의 흔적처럼 보인다. 종이에 기호를 새겨 첼로를 연주하는 리원은 이 범죄자 가족에서 비켜난 유일한 구성원이며 다음 세대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리원의 예술적 재능만이 새로운 시대에 살아남는 유일한 행위로 읽힌다. 


어쩔수가없다05


이미 인류는 로마 제국 시대에 노동의 종말을 경험한 적이 있다. 갑자기 늘어난 식민지에서 끌려온 노예들에 의해 로마 시민들은 노동의 필요성을 잃게 된다. 경제적 생산성을 상실한 시민들에게 로마 정부는 무상 배급을 한다. 그리고 무력감과 공허함에 의한 폭동을 잠재우기 위해 거대한 콜로세움을 세우고 살인의 즐거움을 오락으로 제공한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시대의 선택이었다. 만수의 살인 행각 역시 새로운 시대가 당면한 비극이라고 가정한다면 그건 끔찍한 일이다. 새로운 세대는 이제 코 앞으로 다가왔다. 그 시대가 노동의 압박에서 벗어난 낙원이 될 것인지 경쟁자를 제거하고 살아남는 실낙원이 될 것인지는 현재는 알 수 없다. 우리는 이 새로운 시대에 어떻게 대처해 나갈 것인가?    



K People Focus 모하지 칼럼니스트 (mossisle@gmail.com)  


영화와 음악을 사랑하며 아이들에게 독서와 글쓰기를 가르치는 희망의 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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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5.12.02 12:49 수정 2025.12.02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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