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박동명] FDA 인증을 위한 도전, 그리고 정부와 지방의 과제

▲박동명/한국정책연구원 원장 ⓒ한국공공정책신문

 [한국공공정책신문=김유리 기자] 글로벌 시장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 기업에게 미국 식품의약국(FDA) 인증은 하나의 여권과 같다. 미국이라는 단일 시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미국 유통망에 진입했다는 사실 자체가 곧 전 세계 바이어에게 신뢰의 신호가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여권을 손에 쥐기까지의 과정이 결코 단순하지 않다는 점이다. 방대한 자료 준비, 복잡한 절차, 다국적 규제 체계에 대한 이해, 높은 수준의 품질·안전 기준까지 모두 충족해야 한다.

 

나는 이 도전을 단지 수출 확대를 위한 통과의례로 보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 산업의 성숙도와 책임의 수준을 가늠하게 해주는 하나의 지표이다. 눈앞의 단기 이익보다 안전과 품질에 대한 국제적 신뢰를 우선순위에 두는 기업일수록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성장의 길을 걷게 된다.


그러나 기업의 의지와 노력만으로는 넘기 힘든 벽이 존재한다. 현장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결같다. “제품 경쟁력은 자신 있지만, 인증 과정이 너무 멀고 복잡하다”는 하소연이 반복된다. 실제로 FDA 인증을 받으려면 안전성과 유효성을 입증하는 데이터, 각종 시험성적서와 기술문서, 필요할 경우 임상자료, 현장 실사 대응 준비까지 복합적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통상 1~3년의 시간이 소요되고, 전문 컨설턴트 비용, 시험·분석 수수료, 법률 자문료 등을 합치면 부담 규모가 수억 원대에 이른다.


대기업은 전담 조직과 글로벌 법률사무소, 전문 컨설팅사와 손잡고 이 과정을 시스템으로 관리할 수 있다. 반면 중소기업은 소수 인력이 개발, 생산, 마케팅, 인증 업무까지 병행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들이 뛰어난 기술과 좋은 제품을 갖고도 세계 시장의 문턱 앞에서 머뭇거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전략적 역할이 필요해진다.


이미 중앙정부 차원에서는 여러 지원제도가 가동 중이다. 해외규격인증을 지원하는 사업, 의료·바이오 분야의 해외 인허가 컨설팅, 수출 유망기업 발굴 및 마케팅 지원 프로그램 등 이름만 놓고 보면 다양한 정책이 존재한다. 그러나 실제로 참여해 본 기업들의 평가는 엇갈린다. 수도권과 일부 특화산업에 지원이 집중되거나, 사업 공고와 선정 방식이 지나치게 단기성과 위주로 운영된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이제는 지방자치단체가 보다 적극적으로 ‘글로벌 인증 플랫폼 허브’ 역할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지역 첨단산업단지나 의료·바이오 클러스터 내에 FDA 등 해외 인증을 전담 지원하는 공동센터를 설치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시험·분석기관, 지역 대학, 통·번역 인력, 기술문서 전문가, 규제 자문 네트워크를 한데 묶어 기업이 한 곳에서 상담·시험·문서 준비·교육까지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거점이 전국 주요 권역별로 자리 잡는다면, 지방 기업의 해외 진출 속도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일 것이다.


중앙정부의 역할도 함께 달라져야 한다. 단순히 인증 비용 일부를 보조하는 차원을 넘어, 해외 인증을 획득한 기업에 대해 연구개발 지원사업 가점, 수출금융 우대, 해외 전시·홍보 기회 확대 등 후속 지원을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 한 번 인증을 받은 기업이 다시 성장의 사다리가 되어 지역의 다른 기업들을 이끄는 선순환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글로벌 신뢰를 기반으로 한 산업 생태계”를 만드는 정책 방향이라 할 수 있다.


지방정부의 과제도 보다 구체적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지역 산업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인증 지원이다. 바이오·의료, 식품, 화장품, 소재·부품 등 각 지역이 강점을 가진 분야를 중심으로 해외 인허가 비용을 일부 보조하고, 공용으로 활용 가능한 시험·분석 장비와 인력을 확충해야 한다. 둘째, 이를 뒷받침할 제도 기반이 필요하다. 해외 인증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정비하고, 예산사업으로 안정적으로 편성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명확히 해 두어야 한다. 셋째, 인력 양성이다. 지역 대학과 연계하여 FDA 규제정책, 의료·바이오 인허가, 품질관리(QMS) 등과 관련된 실무 과정과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면, 기업 입장에서도 “찾아가서 묻고 함께 준비할 수 있는 동반자”를 지역 안에서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노력은 단순히 수출 실적을 늘리는 차원에서 끝나지 않는다. 지방정부가 “규제 대응 능력을 갖춘 산업 도시”로 자리매김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외국의 규제기관과 대화할 수 있는 언어와 데이터, 품질 시스템을 갖춘다는 것은, 곧 해당 지역이 글로벌 가치사슬 속에서 일정한 역할과 책임을 떠맡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FDA 인증은 결국 서류 몇 장에 도장을 받는 절차가 아니다. 제품의 안전성과 기업의 신뢰성을 국제사회로부터 검증받는 상징이다. 우리 기업들이 이 길을 더 많이, 더 안정적으로 걸어갈 수 있도록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함께 설계자이자 조력자로 나서야 한다. 지원은 시혜가 아니라, 산업의 국경을 넓히는 투자이다.


우리의 기술력과 아이디어는 이미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그 역량이 국제 인증 체계를 넘어 글로벌 신뢰의 이름으로 평가받도록 돕는 정책적 뒷받침이다. FDA 인증을 향해 흘리는 수많은 기업인의 땀방울이, 우리 산업이 한 단계 더 도약하는 이정표로 남기를 바란다.


​박동명

▷법학박사,  한국정책연구원 원장

▷선진사회정책연구원 원장, FDA 인허가·규제정책 컨설턴트

▷(사)한국공공정책학회 부회장

▷(전) 국민대학교 행정대학원 외래교수

▷(전) 서울특별시의회 전문위원




작성 2025.12.11 22:37 수정 2025.12.17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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