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박동명] 행정통합, 지방소멸의 처방인가 ‘특례 과잉’의 함정인가?

▲박동명/한국정책연구원 원장 ⓒ한국공공정책신문

 [한국공공정책신문=김유리 기자]  (편집자주) 지방소멸과 수도권 일극체제에 대응하기 위한 ‘행정통합 특별법’ 논의가 대전·충남, 광주·전남,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 글은 지방자치 현장에서 서울특별시의회 전문위원으로 근무한 바 있고, 지방의회 역량강화 강의와 정책자문을 지속해 온 박동명 한국정책연구원장이 행정통합의 필요성과 함께, 특별법안에 포함된 ‘특례 과잉’과 ‘권한 집중’의 위험을 법치·분권·견제의 관점에서 점검한 것이다.



요즘 대한민국 지방정치의 키워드는 단연 행정통합이다. 지방소멸과 국가균형발전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겠다며, 광역자치단체를 묶어 ‘초광역 특별시(통합특별시)’를 출범시키는 특별법 논의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정부 또한 광역 통합에 대해 대규모 재정 인센티브를 제시하며 제도화를 서두르는 분위기이다. 문제는 이 특별법들이 ‘희망(초광역 성장·분권)과 위험(특례 남발·권한 집중)’을 함께 품고 있다는 점이다. 행정통합이 국가백년대계가 되려면 ‘통합’이라는 정치적 구호보다 헌정질서의 원칙인 법치, 분권, 견제와 균형이 먼저 정교하게 설계되어야 한다.

 

첫째, 특별법의 골격은 “통합특별시 + 대규모 특례”이다.


현재 논의의 큰 줄기는 세 축이다.

대구·경북의 경우 ‘대구경북특별시’ 설치 특별법안은 7편 17장 18절, 335개 조문 규모로 알려져 있으며, 통합특별시 설치, 자치권 강화, 교육자치 등을 포괄한다. 광주·전남의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특별법은 초안 단계에서 312개 조문, 300개 특례가 공개된 바 있고, 이후 논의 과정에서 370개 특례·382개 조문, 나아가 402개 특례·414개 조문 안까지 거론되는 등 특례와 조문 수가 계속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대전·충남의 경우에도 통합특별시 설치를 전제로 한 특별법 논의가 이어지고 있으며, 여야 안 사이에서 조세·재정분권 범위 등을 둘러싼 차이가 노출되고 있다.

 

이들 법안의 공통된 문법은 비교적 단순하다.

“통합을 하되, 성과를 빨리 내기 위해 중앙권한·규제·재정의 예외(특례)를 대규모로 묶어 패키지화한다.”는 방식이다. 통합이라는 정치·행정적 결단과 함께 대규모 특례 묶음을 한꺼번에 통과시키려는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쟁점은 ‘특례’이다: 특별법이 ‘초헌법적 면허’가 되어서는 안 된다.


특례 자체가 악은 아니다. 권한 이양과 규제 정비를 통해 초광역 거버넌스를 설계하겠다는 취지에는 동의할 여지가 크다. 다만 지금의 방식은 “분권을 위한 특례”라기보다, 지역 현안을 한 번에 끌어오려는 ‘패키지 특례 청구서’로 비쳐지는 대목이 적지 않다.

 

특히 광주·전남 법안 논의에서는 시민사회가 환경 파괴와 난개발 우려를 제기해 왔고, 노동계는 유급휴일의 무급 전환, 파견 확대·기간 연장 등 노동기본권 침해 소지를 강하게 문제 삼아 왔다. 여기서 법치의 질문은 분명하다. 헌법상 기본권(노동·환경·안전 등)과 직결되는 영역에서 특별법이 일반법보다 권리 보호 수준을 후퇴시키는 것이 정당한가 하는 점이다. 특례가 “성장”을 명분으로 하면서 결과적으로는 견제장치를 약화시키고 집행권을 통합특별시장에게 집중시키는 구조가 아닌지도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 특별법은 헌법 위에 설 수 없다. ‘특별’은 예외의 이름이지, 헌정질서의 면제장이 아니다.

 

셋째, 통합은 ‘효율’이 자동으로 따라오지 않는다.


행정통합 논의에서 흔히 등장하는 약속은 “규모의 경제, 중복 제거, 효율”이다. 그러나 국내 지방정부 통합을 분석한 여러 연구는 통합 이후 시민만족도가 악화될 수 있고, 통합이 오히려 관료조직 확대와 렌트추구로 이어질 위험이 있음을 경고한다. 통합을 검토할 때 공공서비스의 질과 제도적 통제장치를 함께 설계해야 한다는 제언도 함께 제시된다.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의 지방행정 통합 관련 보고서 또한 핵심을 짚는다. 이들 보고서는 “과정이 결과만큼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비용절감 논리만으로는 지속가능한 통합을 만들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이해관계자 협의, 역할분담의 명확성, 지방정부와 주민의 실질적 지지가 없으면 제도는 작동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요컨대 “통합특별시”라는 간판만으로는 부족하다. 누가 무엇을 책임지고, 어떤 기준으로 성과를 평가하며, 어떤 방식으로 주민통제를 받을 것인가가 먼저이다.

 

넷째, 행정통합을 ‘국가백년대계’로 만드는 네 가지 조건이다.

행정통합 특별법이 진정으로 지방소멸 대응과 균형발전의 엔진이 되려면, 최소한 다음 네 가지는 선결되어야 한다.

 

첫째, 특례는 ‘수량 경쟁’이 아니라 ‘헌법합치성 경쟁’이어야 한다.


특례는 필수적인 것만 엄선하고, 기본권·환경·노동·안전 영역에서 일반법을 후퇴시키는 조항은 원칙적으로 배제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일몰(선셋), 사후평가, 재승인 장치를 함께 두어 “특례의 자동연장”을 막아야 한다.

 

둘째, 통합특별시장 권한 확대만큼 지방의회·감사·정보공개의 권한도 강화되어야 한다.


초광역 집행부가 커질수록 견제의 축도 함께 커져야 한다. 예산·조례·정책평가 기능을 강화하고, 감사기구의 독립성과 자료접근권을 실질화해야 “통합의 이름으로 커진 권력”이 주민통제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는다. 정보공개와 정책 평가를 제도적으로 강화함으로써 주민이 통합 이후의 행정을 감시·평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셋째, 주민 참여는 ‘절차’가 아니라 ‘통합 이후 갈등비용을 줄이는 투자’이다.


행정통합은 생활권, 정체성, 서비스 체계를 흔드는 변화이다. 충분한 정보 제공과 숙의 없이 속도전으로 추진하면 통합 이후의 불신과 갈등이 통합의 성과를 갉아먹게 된다. 세계은행 등 국제사례에서 강조하듯 광범위한 이해관계자 협의는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좌우하는 요소이다. 주민투표, 공론장, 시민참여 계획 수립 과정 등을 제도화해 ‘시간이 드는 절차’가 아니라 ‘갈등비용을 줄이는 투자’로 인식해야 한다.

 

넷째, “통합 효과”를 숫자와 일정으로 설계해야 한다.


재정절감, 서비스 개선, 산업전략의 실현은 자동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조직 재편, 공공서비스 재배치, 광역 인프라 투자 우선순위, 성과지표(KPI)와 재정계획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 그리고 그 성과를 다음 예산, 조례, 정책개선으로 환류시키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통합 전 단계에서부터 “5년, 10년 내 어느 정도의 재정효과와 서비스 개선을 달성할 것인지”를 가시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섯째, 지방선거는 ‘통합시장 선출’이라는 국민투표적 성격을 띨 수 있다.


정부와 정치권이 통합 일정과 특별법 처리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일부 권역에서는 법안대로라면 6월 지방선거에서 통합 단체장을 선출하고 7월 1일 통합특별시를 출범한다는 일정이 거론되고 있다. 이럴수록 더 중요해지는 것은 한 가지이다. 행정통합을 선거용 개발공약 패키지로 만들지 않는 정치의 책임이다.

 

정당은 통합을 동원 구호로 소비하지 말아야 한다. 후보는 특례의 ‘양’이 아니라 지방민주주의(견제·참여·투명성)를 어떻게 보장할지로 경쟁해야 한다. 국회는 당리당략을 떠나 헌법 원칙과 지방자치의 기본질서를 훼손하지 않도록 법안을 정교하게 다듬어야 한다. 통합특별시의 위상과 권한을 높이는 논의 못지않게, 주민과 지방의회가 이를 통제하고 평가할 수 있는 장치에 더 많은 지면과 조항을 할애해야 한다.

 

오늘의 특별법이 내일의 ‘생활헌법’이 된다.


행정통합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일 수 있다. 그러나 통합의 명분이 크다고 해서 그 과정과 설계가 허술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특히 수백 개 특례가 담긴 특별법은 지역사회의 규칙을 장기간 지배하는 ‘생활헌법’이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특례의 유혹이 아니라 법치와 분권, 그리고 견제와 균형이다. 통합은 목표가 아니라 수단이다. 주민의 삶이 나아지고 지방민주주의가 더 단단해지는 통합, 그 방향으로 입법이 정리되기를 바란다.


박동명

▷법학박사,  한국정책연구원 원장

▷선진사회정책연구원 원장

▷(사)한국공공정책학회 부회장

▷(전)국민대학교 행정대학원 외래교수

▷(전)서울특별시의회 보건복지 전문위원


 

작성 2026.01.30 18:42 수정 2026.01.30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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