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가 절로 숙여지는 시간.

사진출처; freepik

 직장인에게 점심시간은 어떤 의미일까요. 2023년에 흥미로운 설문조사가 있었지요. SK커뮤니케이션즈의 시사 폴(Poll) 서비스 네이트 Q는 ‘점심시간 중 집에 다녀온다는 이유로 상사에게 혼났다는 사연, 어떻게 생각하세요?’라는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요.

해당 조사의 응답자 1만 1204명 가운데 87%는 ‘점심시간은 법적 휴게시간으로 전혀 문제 될 게 없다’라고 답변했고, ‘점심시간도 회사 근무의 연장’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2%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응답자가 점심시간을 개인의 자유 시간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인데요.


 점심시간이 2시간인 직장에서는 간단히 식사하고 취미나 운동, 공부 등에 투자하기도 한다고 들었습니다. 점심시간을 함부로 일에 양보해 달라 할 수 없는 문화가 자연스레 자리 잡은 듯합니다.

 

 얼마 전 감기에 걸린 엄마를 모시고 이사 간 곳 근처 소아과에 갔습니다. 구십가까운 나이라 스쳐 지나가는 감기에도 휘청이니 영양주사도 놔달라 하고, 1시간 40분은 족히 걸릴 거라 해서 병원이 초행이라고 동행해 준 지인과 1층 카페로 내려가 수다 떨다가 올라가 보니 문이 잠겨있습니다. 병원 입구에 12시부터 2시까지 점심시간이라 쓰여있고 등은 꺼져있어 어둡습니다.

 

 시계를 보니 12시 40분. 정물화 같은 병원 내부를 유리문에 바짝 붙어 두 손을 오목하게 해서 들여다보며 난감했습니다. 링거 주삿바늘을 꽂을 때 혈관을 못 찾아서 엄마를 힘들게 한걸 못마땅하게 여기던 터에 투여를 마칠 시간이 됐는데 안내도 없이 이게 뭐지 싶은 거죠.

인기척을 들었는지 간호사가 나와 문을 열어줍니다.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불편한 기색으로 말없이 주사실로 향했습니다.


 들어서자 아까 혈관을 못 찾던 간호사가 엄마가 부르는 노래에 장단을 맞추고 있는 게 아닙니까. 심심하다 하셔서 말동무하고 있었노라고. 노래도 잘하시더라고. 치매 17년 차 엄마는 잠시 멈추었던 노래를 다시 시작합니다. 노래 끝에 어금니에 힘을 실어 험한 말을 하는지라 화제를 돌려 엄마를 진정시키는 중에도 여지없이 욕을 쏟아냅니다. 이를 어찌 견디셨냐 하니 “저도 이런 분이 집에 계세요”라고 간호사가 답합니다.


 부끄러웠습니다. 링거액이 많이 들어가네 마네 시비 하던 마음까지도. 그리고 고마웠습니다. 직장인에게 점심시간이 어떤 의미인지 짐작하기에 환자에게 양보한 40분을 상상하기도 힘들었으니까요.

 그러고도 5분 후 링거액이 끝까지 들어가는 걸 확인하고 주삿바늘을 뺀 자리에 반찬고를 붙여 뭉근히 지압해 줍니다. 엄마의 두서없는 질문들을 웃음 실어 답해주면서.


그녀에게 일은 마지못해 하는 일이 아닐 것이며, 단순히 의무만으로 채워진 시간도 아닐 것이고, 업무 외의 일을 업무 시간에 하느라 분주하지도 않을 테지요.

좀 전에 불편한 기색을 온몸으로 표현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말없이 깊이 머리 숙여 인사하고 나왔습니다.

머리가 저절로 숙여지는 경험을 독자님과 나눠봅니다.

 

K People Focus 최영미 칼럼니스트 (ueber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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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6.02.15 09:08 수정 2026.02.23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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