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박동명] 노인빈곤, ‘하후상박’의 기초연금으로 바로잡아야 한다

▲박동명/한국정책연구원 원장 ⓒ한국공공정책신문

 [한국공공정책신문=김유리 기자]  (편집자주) 박동명 교수는 서울특별시의회 보건복지전문위원을 역임하며 기초연금, 노인일자리, 의료·돌봄 정책 등 노인복지 전반을 직접 다뤄온 현장 전문가이다. 사회법을 전공한 법학박사이자 선진사회정책연구원장으로서, 공적연금과 기초연금, 지방정부 복지재정의 구조적 문제를 오랫동안 연구해 왔다. 15년간의 의회·행정 경험과 20년간의 대학 강의, 그리고 한국공공정책신문 발행인으로서의 공공정책 비평 활동을 통해, 제도 설계와 현장 작동 사이의 괴리를 짚어내는 데 강점을 보여 왔다. 이번 칼럼은 노인빈곤과 기초연금 개편 논의를 둘러싼 정치·재정·법적 쟁점을 균형 있게 조망하고, ‘하후상박’ 원칙과 재정 지속가능성을 동시에 고려한 정책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게재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초고령사회로 가는 속도만큼이나 노인빈곤 문제도 전례 없이 심각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은 40% 안팎으로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다. 노인 네 명 중 두 명 가까이가 중위소득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소득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노인빈곤의 완충장치로 도입된 기초연금은 출범 이후 꾸준히 확대되며 일정 부분 성과를 냈다. 노인빈곤율은 2011년 46.5%에서 2023년 38%대 수준으로 낮아졌지만, 여전히 OECD 평균(13% 안팎)의 세 배에 이르는 구조적 취약 상태다. 이제 문제는 “얼마를 더 줄 것인가”를 넘어, “누구에게, 어떤 원칙으로 줄 것인가”로 이동하고 있다.

 

기초연금, ‘하위 70% 일괄 지급’의 한계


현재 기초연금은 만 65세 이상 노인 중 소득 하위 70%에게 월 34만9천여 원 수준으로 지급되고 있으며, 2027년까지 40만 원 수준으로 단계적 인상을 추진 중이다. 이 과정에서 소득 하위 70%라는 정률 기준을 맞추기 위해 선정기준액이 해마다 인상되고, 수급 범위가 넓어지면서 재정 부담도 급증해왔다. 2024년 기준 기초연금 예산은 20조 원 중반에서 30조 원에 근접하는 규모로 늘어났으며, 수급 노인도 수백만 명 단위로 증가하고 있다.

 

문제는 ‘하위 70%’라는 숫자 자체가 제도의 목적이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기초연금의 본래 취지는 국민연금 사각지대와 저소득 노인의 기본 생활비를 보완하는 데 있다. 그러나 지금의 설계는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노인까지 포함시키면서, 가장 절박한 빈곤 노인에게 집중하지 못하는 구조를 낳고 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 등 국책연구기관 분석에 따르면, 국민연금 수급 노인이 늘고 노인 전체 소득 구조가 개선되면서, 도입 당시와 달리 “하위 70%” 기준을 계속 유지할 타당성이 약해졌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국민연금이 대중화되며 노인 상대적 빈곤율은 완만히 하락하는 추세지만, 기초연금은 여전히 동일 비율을 유지한 채 예산과 수급자 규모만 확대되는 모습이다.

 

소득인정액 ‘착시’와 중산층까지 포괄하는 역진성


기초연금 수급 여부를 가르는 핵심 기준은 ‘소득인정액’이다. 소득인정액은 근로·사업·연금소득뿐 아니라 부동산·금융자산 등 재산을 소득으로 환산하고, 각종 공제를 적용해 산출한 금액이다. 이론상으로는 노인의 종합적인 경제력 지표가 되어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각종 공제와 완화 규정으로 인해 실제 소득보다 훨씬 낮게 나타나는 ‘착시’가 발생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26년 기준 노인 단독가구의 기초연금 선정기준액은 월 247만 원, 부부가구는 약 395만 원 수준으로 설정되어 있다. 문제는 소득인정액이 이 기준 이하로 나오더라도 실제 연간 소득은 5천만~5천6백만 원에 달하는 사례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상당한 금융자산·부동산을 보유하고,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 수급액도 적지 않은 중산층 노인이 기초연금을 함께 받는 구조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국책연구기관 분석에서도 소득인정액이 0원으로 평가된 수급자의 평균 총소득은 월 100만 원 미만으로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반면, 소득인정액이 100만 원 수준인 수급자는 중위소득의 50%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제도 안에 ‘극빈층’과 ‘중산층에 가까운 노인’이 함께 포함되어 동일한 급여를 받고 있는 셈이다.

​

 

이처럼 소득인정액 산정 방식의 맹점과 하위 70% 일괄 지급 구조가 결합하면서, 기초연금은 점점 ‘보편급여에 가까운 현금복지’ 성격을 띠고 있다. 그 결과, 진짜 절박한 노인의 생활비를 두텁게 보호하기보다는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계층에까지 얇게 분산되는 역진성이 심화되고 있다.

 

재정 지속가능성과 세대 형평성의 경고


고령화 속도와 기초연금 예산 증가 속도를 고려하면 재정 지속가능성은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기초연금 급여를 2027년까지 40만 원으로 인상하고, 이후 물가에 연동해 유지할 경우 2070년까지 누적 추가 재정 소요가 288조 원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여기에 국민연금 재정수지 악화, 건강보험·장기요양보험 등 사회보험 지출 증가까지 겹치면, 현 세대뿐 아니라 미래 세대의 부담은 눈덩이처럼 커질 수밖에 없다.

 

기초연금은 노후 소득 보장을 위해 꼭 필요한 제도이지만, 그렇다고 무제한 확대가 정답일 수는 없다. 정치적 경쟁 속에서 “모두에게 더 많이”라는 구호만 앞세운다면, 결국 청장년 세대의 조세·보험료 부담을 급격히 키우고, 세대 간 갈등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특히 생산연령인구가 빠르게 줄어드는 한국의 인구구조를 감안하면, ‘보편 확대’보다는 ‘선별 강화’ 원칙으로 방향을 돌려야 재정과 세대 형평성을 동시에 지킬 수 있다.

 

‘하후상박’과 이중 안전망으로 재설계해야


기초연금을 노인빈곤 해소의 핵심 수단으로 유지하면서도 재정·형평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제도 설계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필자는 다음과 같은 방향을 제안한다.

 

첫째, 현행 ‘소득 하위 70% 일괄 지급’에서 단계적·차등적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국책연구기관과 전문가들은 기초연금의 역할을 “기본생활비에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급여”로 규정하고, 소득인정액이 일정 수준 이상인 경우에는 연금액을 낮추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제언한다. 소득·자산 수준에 따라 급여를 2~3단계로 나누는 ‘하후상박식 차등구조’를 도입해, 가장 저소득 노인에게는 현재보다 더 두텁게,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계층에는 축소된 급여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

​ 

둘째, 선정기준액과 소득인정액 산정 방식을 전면적으로 손봐야 한다. 정부 역시 최근 소득인정액 계산 방식의 착시로 중산층까지 포함되는 문제를 인정하고, 산정 체계 개편을 검토하고 있다. 부동산·금융자산의 실질 가치를 보다 정확히 반영하고, 과도한 공제·완화 규정을 정비함으로써 “실제 경제력에 부합하는 소득인정액”을 산출해야 한다. 이를 통해 고소득·고자산층이 사실상 기초연금 대상에서 자연스럽게 제외되도록 하는 것이 공정성에 부합한다.

 

셋째, ‘이중 안전망’ 관점에서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의 역할 분담을 재정립해야 한다. 국민연금이 기본적인 노후소득을 책임지는 1차 안전망이라면, 기초연금은 국민연금 사각지대 및 저소득 노인을 대상으로 한 2차 안전망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국민연금 수급액이 일정 수준 이상인 노인에 대해서는 기초연금 급여를 점진적으로 조정하거나, 소득·자산 기준을 보다 엄격히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그 대신 국민연금 사각지대, 영세 자영업자·비정규직 출신 노인에게는 기초연금을 보다 두텁게 지원하여 빈곤 위험을 실질적으로 줄여야 한다.

 

넷째, ‘현금 지급’ 중심에서 주거·의료·돌봄과 결합한 통합적 지원으로 나아가야 한다. 노인빈곤은 단순 소득 부족을 넘어, 주거불안·의료비 부담·돌봄 공백과 결합할 때 더 심각해진다. 일정 수준 이하의 저소득 노인에게는 기초연금을 상향 지급하되, 공공임대주택·의료비 경감·지역사회 통합돌봄과 연계하는 패키지형 지원 모델을 도입하면 같은 재원으로도 체감 효과를 크게 높일 수 있다.

 

다섯째, 지방정부와 지방의회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노인빈곤 양상은 대도시·농어촌, 수도권·비수도권에 따라 크게 다르다. 중앙정부가 기초연금의 기본 틀과 재정 책임을 지되, 지방정부가 기초연금과 연계한 맞춤형 복지·일자리·돌봄 정책을 설계하고, 지방의회가 이를 점검·통제하는 구조를 강화해야 한다. 노인 실태조사, 복지 사각지대 발굴, 민·관·교회·시민사회와의 연계를 통해 지역단위 안전망을 촘촘히 짜야 한다.

​ 

‘더 많이’가 아니라 ‘더 공정하게, 더 두텁게’


한국의 노인빈곤은 단순 통계가 아니라, 한 세대의 노동과 헌신이 가난으로 귀결된 사회적 비극이다. OECD 1위라는 오명은 단지 수치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노후를 허용하고 있는지에 대한 도덕적 질문이다. 기초연금은 이 비극을 완화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인 만큼, 정치적 인기 경쟁의 도구가 아니라, 가장 어려운 이웃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정의로운 제도로 재탄생해야 한다.

 

“모두에게 조금씩 더”가 아니라, “가장 어려운 이들에게 먼저, 더 두텁게”라는 원칙이 필요하다. 소득·자산이 충분한 노인에게 돌아가는 연금의 일부라도 빈곤 노인에게 돌릴 수 있다면, 노인빈곤율은 훨씬 빠르게 낮출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하후상박의 기초연금 개편이 지향해야 할 방향이다.

 

연금제도는 사회적 약자를 우선하는 사랑과 정의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 가진 자에게 더 주는 것이 아니라, 가장 약한 고리를 먼저 보호하는 것이 공동체를 붙드는 길이다. 기초연금이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면서도 노인빈곤을 실질적으로 줄이는 제도로 거듭날 수 있도록, 정치권과 정부, 학계, 시민사회가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한다.

 

박동명

▷법학박사,  한국정책연구원 원장

▷선진사회정책연구원 원장

▷(사)한국공공정책학회 부회장

▷(전)국민대학교 행정대학원 외래교수

▷(전)서울특별시의회 전문위원



 

작성 2026.02.18 02:23 수정 2026.02.18 0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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