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박윤주] 올림픽과 ‘마중’ –한국의 환대 문화에 대한 단상

▲박윤주 / 경기대학교 서비스경영전문대학원 교수 ⓒ한국공공정책신문

 [한국공공정책신문=최진실 기자] 이탈리아에서 개최된 제25회 밀라노 코르티나 동계올림픽 올림픽이 폐막되었다. 경기장의 환호만큼이나 세계의 시선은 뜨거웠고, 그 열기는 경기장에만 국한되지 않고 도시의 거리와 공항, 숙박시설까지 닿았다. 국제 스포츠 이벤트는 더 이상 스포츠만으로 기억되지 않는다. 방문객이 어떤 환대를 경험했는가는 결국 그 나라의 브랜드 이미지에 영향을 미친다.


2013년 도쿄 올림픽 유치 프레젠테이션에서 일본은 ‘오모테나시’라는 단어 하나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상대의 필요를 미리 헤아린다는 서비스 철학을 국가 브랜드로 제시했고, 이후 관광과 공공서비스 전반에서 이를 전략적으로 활용해 왔다.


그렇다면 한국에는 우리만의 환대 이야기가 없을까. 사실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손님을 맞이하는 문화를 삶의 중심에 두고 있었다. 다만 그것을 하나의 이름으로 설명하지 않았을 뿐이다. 조선시대 선비의 삶을 설명하는 말 가운데 ‘봉제사 접빈객(奉祭祀 接賓客)’이라는 표현이 있다. 조상을 섬기고 손님을 맞이하는 일을 인간의 기본 덕목으로 삼았다는 뜻이다. 환대는 선택이 아니라 인격의 기준이었다. 


오래전부터 이 땅에는 손님을 마중하는 문화가 있었다. 마중은 단순히 문 앞에서 인사를 건네는 일이 아니다. 손님이 오기 전부터 자리를 비워 두고 시간을 준비하며 마음을 먼저 내어 놓는 일이다. 한국의 환대는 대문 앞의 인사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이미 집 안 곳곳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조선의 한옥을 떠올려 보자. 먼 길을 온 손님이 대문을 지나 들어오면 가장 먼저 향하는 곳은 사랑채였다. 가족의 생활 공간과 분리된 이곳은 낯선 이를 맞이하기 위해 비워 둔 자리였다. 손님은 그곳에서 쉬고, 술을 나누며 밤늦도록 이야기를 이어갔다. 공간 자체가 환대의 시작이었던 셈이다.


그 준비는 손님이 도착한 뒤에 시작되지 않았다. 집에서는 계절에 맞추어 술을 미리 빚었다. 발효에는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오늘의 언어로 말하면 방문 이전부터 시작되는 서비스였다.


사랑방 안으로 들어서면 병풍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책과 도자기, 향로가 그려진 책거리 병풍이다. 주인은 자신을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공간이 먼저 말을 건넨다. 무엇을 읽고 무엇을 아끼는 사람인지, 어떤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인지 손님은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겨울이라면 화로가 놓여 있었을 것이다. 조선의 집에서는 불씨를 쉽게 꺼뜨리지 않았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손님에게 온기를 건네기 위해서다. 추운 길을 걸어온 이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음식이 아니라 따뜻함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왕실에서도 환대의 방식은 다르지 않았다. 외교 사신을 맞이하는 연회에는 용 문양이 새겨진 술 항아리인 용준(龍樽)이 등장했다. 일상용이 아니라 귀한 손님을 위해 꺼내는 그릇이었다. 환대는 예절과는 또 다른 존중의 표현이었다.


이 환대는 인간에게만 머물지 않는다. 종묘제례에서는 이미 세상을 떠난 조상까지 손님처럼 맞이한다. 음악과 음식, 술을 정성껏 준비하는 의례는 환대가 삶의 태도이자 세계관이었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이러한 문화 자산이 아직 현대의 정책 언어로 충분히 번역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리의 공항과 관광 서비스는 기능적으로 친절하지만, 방문객이 한국을 떠나며 이야기할 수 있는 경험의 서사는 아직 부족하다.


다가올 국제 스포츠 이벤트와 대형 행사 유치를 준비한다면 이제는 시설이 아니라 경험을 설계해야 한다. 손님 환영 공간을 사랑채처럼 구성하고, 지역의 술과 음식을 이야기와 함께 소개할 수도 있다. 호텔 로비에는 책거리의 현대적 해석을 적용하고, 겨울 도시에서는 화로의 온기를 공공 디자인으로 구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전통을 재현하는 일이 아니라 그 안의 철학을 오늘의 서비스로 번역하는 일이다. 일본이 ‘오모테나시’라는 언어로 환대를 설명했다면, 우리는 ‘마중’이라는 말로 세계를 맞이할 수도 있겠다. 먼저 나가 기다리고, 오기 전부터 준비하며, 함께 시간을 나누는 태도다.


우리에게는 손님을 위해 술을 먼저 빚고, 겨울밤 불씨를 남겨두던 아름다운 전통이 있다. 그 시간의 축적이 오늘의 우리에게 깊은 의미를 전한다. 우리가 다음 올림픽 유치를 지금부터 준비해야 하는 이유다.


박윤주

경영학박사(서비스경영)

경기대학교 서비스경영전문대학원 교수

 

작성 2026.02.23 16:13 수정 2026.02.23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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