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정찬] (시) 삼림(森林)에 사는 미학

[한국공공정책신문=최진실 기자] 한정찬의 이 한 편의 시 7

 

 

삼림(森林)에 사는 미학

 

 

삼림 깊숙이 들어서자
안개가 말없이 풀리고
찬 바람이 잎새를 스친다.

 

젖은 흙냄새가 먼저
몸속으로 스며들고
새소리 하나 없는 숲이
귀를 열어 둔다.

 

기다림은
멈춘 것이 아니라
천천히 젖어 가는 일.

 

겨울나무의 아래
숨을 고르면
비워진 자리마다
빛이 눌러앉는다.

 

산 아래 고택의 하루가
오늘도 길게 숨을 쉰다.

 

 

<해설>

‘기다림’과 ‘삶의 태도’를 숲이라는 자연의 감각 속에 겹쳐 놓은 자연시이다. 화자는 삼림 깊숙이 들어가며 시각·후각·청각의 순서로 자연을 인식하는데, 이는 사유보다 몸의 반응이 먼저 일어나는 경험을 강조한다. 안개, 찬 바람, 젖은 흙냄새, 새소리 없는 숲은 모두 비어 있음과 정적을 드러내며, 그 속에서 기다림은 멈춤이나 결핍이 아니라 ‘천천히 젖어 가는 과정’으로 재정의된다. 특히 겨울나무 아래 빛의 대비는 비움과 채움의 순환을 상징하며, 자연이 스스로 균형을 회복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산 아래 고택의 하루는 인간의 삶 역시 자연의 호흡 속에 놓여 있음을 암시하며, 조급함 대신 오래 숨 쉬는 삶의 리듬을 조용히 권유한다. 전체적으로 이 시는 설명을 줄이고 감각을 앞세워, 자연 속에서 드러나는 기다림의 미학을 담담하게 드러낸다.

 

<감상>

시를 읽으며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말수가 적은 숲에 들어선 듯한 고요함이다. 화자는 자연을 해석하거나 의미화하려 들지 않고, 안개와 바람, 냄새와 적막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 태도 덕분에 독자는 시를 ‘이해’하기보다 ‘머무르게’ 된다. 특히 기다림을 “천천히 젖어 가는 일”로 표현한 대목은 삶의 속도를 낮추며 마음을 가라앉힌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처럼 보이지만, 실은 가장 깊이 변화가 진행되는 순간임을 깨닫게 한다. 겨울나무 아래 빛이 눌러앉는 장면에서는 비워진 마음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평온이 느껴진다. 마지막의 고택과 길게 숨 쉬는 하루는, 인간의 삶 또한 자연처럼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는 조용한 위로로 다가온다. 전체적으로 이 시는 독자를 숲속에 잠시 내려놓고, 기다림을 견디는 법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법을 가르쳐준다.




▲한정찬/한국공공정책신문 칼럼니스트 ⓒ한국공공정책신문

 

한정찬

□ 시인(詩人), 동시인(童詩人), 시조시인(時調詩人)

□ (사)한국공무원문학협회원, (사)한국문인협회원, (사)국제펜한국본부회원, 한국시조시인협회원 외

□ 시집 ‘한 줄기 바람(1988)외 29권, 한정찬시전집 2권, 한정찬시선집 1권, 소방안전칼럼집 1권’ 외

□ 농촌문학상, 옥로문학상, 충남펜문학상, 충남문학대상, 소방문학대상, 소방문화상, 충청남도문화상 외



작성 2026.03.06 18:30 수정 2026.03.06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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