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이진희] 리더의 언어가 무거워야 하는 이유

▲이진희/한국공공정책신문 칼럼니스트 ⓒ한국공공정책신문

 [한국공공정책신문=김유리 기자]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의 리더인 정치 지도자들을 비롯한 공인들의 말이 점점 가벼워지고 있다. 문제는 단지 표현 방식이 경박하다는 데 있지 않다. 한 조직의 미래를 결정하고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이들이 공적 책임의 무게를 망각한 채, 저급하고 무책임한 언어를 거리낌 없이 내뱉고 있다는 데 더 큰 심각성이 있다. 엄밀히 말하면 이는 단순히 가벼운 정도가 아니다. 때로는 자라나는 아이들 앞에서조차 민망할 만큼 수치스러운 언어가 공적 공간을 떠돈다. 생각은 짧고 태도는 천박하며, 공적 언어는 설득과 책임의 수단이 아니라 선동과 조롱의 도구로 전락하고 있다.

 

원래 리더의 말은 신중해야 하고, 절제되어야 하며, 그만큼 더 무거워야 한다. 말 한마디가 사회를 흔들고, 여론을 갈라놓고,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도자의 언어는 단순한 개인적 표현이 아니라 공적 판단의 일부로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오늘의 현실을 살펴보면 객관적 사실을 따지기보다 자극적인 감정을 먼저 던지고, 비판을 받으면 성찰보다 비아냥으로 맞서는 일이 낯설지 않다. 공적 자리를 책임의 공간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는 무대쯤으로 여기는 태도마저 보인다. 국가적 위기 앞에서조차 농담부터 던지고 지지층의 환호만 계산하는 정치 지도자가 있다면, 그는 공동체를 이끄는 리더라기보다 순간의 반응을 좇는 선동가에 가깝다. 그런 태도는 국정 운영의 낮은 수준을 드러낼 뿐 아니라, 결국 국격까지 떨어뜨린다.

 

더 큰 문제는 리더의 저급한 언어가 사회 전체로 번져나간다는 점이다. 지도자의 막말과 조롱이 일상화되면 사회의 언어도 덩달아 거칠어진다. 사실을 차분히 살피기보다 감정을 툭 던지고, 사안을 설명하기보다 상대를 비아냥거리며, 벌어진 일에 책임지기보다 반응을 즐기게 된다. 토론보다 편 가르기가 쉬워지고, 숙의보다 적대가 앞서게 된다. 그렇게 되면 공동체는 서로를 이해하고 설득하는 사회가 아니라, 자기 진영의 환호 속에서 상대를 향해 소리만 높이는 불신의 집단으로 변해간다.

 

그런데도 이런 경박함은 종종 친근함이나 솔직함으로 포장된다. 유머를 구사했을 뿐이라고, 소탈한 화법일 뿐이라고, 오히려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쪽이 문제라는 식으로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유머와 천박함은 다르다. 소탈함과 무책임도 결코 같은 것이 아니다. 자신을 낮추는 농담은 겸손과 여유를 보여주는 품위 있는 태도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타인을 깎아내리고, 공적 문제를 희화화하며, 공동체의 상처를 가벼운 말장난으로 소비하는 언어는 저질스러운 언어 유희에 불과하다. 그것은 친근함이 아니라 무례함이고, 소신이 아니라 독선이며, 직설이 아니라 무책임이다.

 

우리는 할 말을 하는 것과 함부로 말하는 것을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솔직하다는 말로 무지와 난폭함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직설적이라는 이유로 무례함이 면책될 수도 없다. 거침없고 당당하다고 해서 리더의 언행이 훌륭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공적인 자리에 있을수록 말의 속도를 늦추고, 표현을 가다듬고, 책임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리더가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자격이다.

 

더 두려운 것은 이런 경박한 언행에 우리 사회가 서서히 둔감해진다는 사실이다. 처음에는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나” 하고 놀라고, 그 다음에는 분노한다. 그러나 그것이 반복되면 어느 순간 “원래 정치가 저렇지”, “원래 리더가 다 그렇지” 하며 체념하게 된다. 바로 그 지점에서 공적 언어의 타락은 한 개인의 일탈을 넘어 사회 전체의 기준 붕괴로 이어진다. 그러니 지금 리더에게 필요한 것은 더 강한 캐릭터가 아니다. 말의 무게를 아는 진중함과, 말에 따르는 책임을 감당하려는 태도다.

 

그러나 리더의 저급한 언행을 바로잡는 일은 그들 개인의 각성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을 지켜보고 평가하는 시민들의 성숙한 자세와 책임 또한 중요하다. 시민은 리더의 막말을 통쾌함이나 솔직함으로 소비해서는 안 된다. 내 편을 대신해 상대를 거칠게 공격해 준다는 이유만으로 무례와 천박함에 박수를 보내기 시작하면, 결국 우리 사회의 공적 기준은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 성숙한 시민이라면 말의 자극성과 흥분보다, 그 말 속에 담긴 사실과 책임, 그리고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을 먼저 살펴야 한다.

 

또한 시민은 저급한 언어를 단순한 정치적 취향의 문제로 가볍게 넘겨서도 안 된다. 민주주의는 투표라는 절차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공인의 언어와 태도를 끊임없이 평가하고, 거짓과 조롱, 혐오와 무책임에 분명히 선을 긋는 시민적 감각이 있을 때 비로소 건강하게 유지된다. 잘못된 언행에 대해 비판하고, 사과와 책임을 요구하며, 그것이 반복될 때는 단호하게 외면하는 태도야말로 성숙한 시민의식이다. 리더의 말이 공동체의 수준을 드러낸다면, 그 말을 용인하거나 거부하는 시민의 태도 역시 그 사회의 품격을 결정한다.

 

민주주의는 단지 제도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대화와 토론의 상대를 존엄한 인간으로 대하는 마음, 사실에 근거해 옳고 바르게 말하려는 태도, 공적 책임을 의식하는 언어가 함께 있을 때에만 든든히 버틸 수 있다. 그렇기에 리더의 막말은 결코 개인의 개성으로 치부될 수 없다. 경박함은 친근함의 증거가 아니라 무능과 무책임의 징후일 수 있음을 우리는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리더의 언어가 가벼워질수록 사회의 언어도 가벼워지고, 그 대가는 결국 국민 모두가 치르게 된다.

 

결국 민주주의를 지키는 힘은 제도 그 자체에만 있지 않다. 저급함에 휩쓸리지 않고, 품위와 책임의 언어를 끝까지 지키려는 시민들의 인내와 분별 속에 있다. 품격 없는 리더를 비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품격 없는 언어에 박수치지 않고, 따라 하지 않고, 끝내 용인하지 않는 시민이 많아질 때 비로소 우리 사회의 공적 언어도 다시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진희   

서울대학교 대학원 졸업(교육학박사)

(현) 진해세화여자고등학교 교장

(전) 서울대학교 강사

(전) EBS 수능윤리 강사





작성 2026.04.17 10:03 수정 2026.04.17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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