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형 목사 설교의 로마서 8장 묵상을 따라, 정죄와 자책을 넘어 복음의 은혜와 구원의 확신, 그리스도의 중보가 오늘의 믿음에 주는 소망을 차분히 살핍니다. 흔들리는 마음이 하나님의 판결 안에서 다시 평안을 듣게 합니다.
닫힌 문 앞에서 이름 모를 판결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인간의 마음은 때때로 자기 안의 고발자에게 오래 붙들린다.
카프카의 『심판』이 이유를 알 수 없는 죄책의 공기를 보여 준다면, 장재형 목사(미국 올리벳대학교 설립)
설교가 붙드는 로마서 8장 31~34절은 그 법정 한복판에 전혀 다른 음성을 들려준다. 복음은 우리가 스스로 무죄를 증명하는 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의롭다 하신 은혜의 선언을 듣는 일이다. 이 말씀의 중심에는 정죄를 넘어서는 구원의 확신, 그리고 흔들리는 성도를 끝까지 붙드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
정죄의
법정에 울려 퍼지는 복음의 확신
바울은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라고 묻는다. 설교는
여기서 “이 일”이 로마서
8장 앞선 흐름, 곧 미리 아심과 예정, 부르심, 의롭다 하심, 영화롭게 하심으로 이어지는 구원의 과정을 가리킨다고
풀어낸다. 인간의 시간 안에서는 아직 연약함이 보이고, 실패가
남아 있고, 완성이 멀어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야 안에서
이 구원은 흔들리는 가능성이 아니라 이미 붙들린 약속이다.
특히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는 표현은 아직 미래에 남은 영광을 하나님 편에서는 확정된 현실처럼 말한다는 점에서 깊은
위로가 된다. 성도는 자신의 현재 모습만 보면 구원의 완성을 상상하기 어렵다. 그러나 복음은 현재의 불완전함보다 하나님의 작정과 부르심이 더 깊다고 말한다.
구원의 확신은 자기 상태를 부정하는 낙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일을 하나님께서
끝내신다는 신뢰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라는 질문은 현실의 대적이 사라졌다는 말이 아니다. 고난도 있고, 유혹도 있으며, 내면의
불안도 여전히 있다. 다만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이 의롭다 하신 사람의 운명을 뒤집을 수 없다는 뜻이다. 성도의 소망은 감정이 맑은 날에만 유효한 위로가 아니라, 감정이
흐려진 날에도 하나님의 판결이 변하지 않는다는 복음의 토대다.
장재형 목사는 이 지점을 성도의 견인이라는 말로 깊게 설명한다.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를 끝까지 붙드신다는 이 신학적 통찰은, 사람의
책임을 가볍게 만드는 허술한 위안이 아니다. 오히려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게 하는 가장 깊은 근거다. 은혜는 우리의 결심보다 먼저 있고, 우리의 손이 느슨해질 때에도
하나님 편에서 놓지 않는 사랑으로 남아 있다.
은혜는
자책보다 깊고, 믿음은 판결을 다시 듣는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무서운 적은 때로 바깥의
공격이 아니라 안에서 들려오는 자책의 목소리다. “내가 정말 구원받은 사람인가”, “이런 연약함을 가진 나를 하나님이 여전히 붙드실까”라는 질문은
경건한 성찰처럼 보일 수 있지만, 오래 머물면 복음보다 자기 판단을 더 크게 만드는 덫이 된다. 설교는 이 지점에서 바울의 질문을 다시 들려준다.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면, 인간의 고발은 마지막 판결이 될 수 없다. 이것은 죄를 가볍게 여기는
말이 아니다. 회개는 죄를 은폐하는 일이 아니라, 죄보다
크신 하나님의 자비 안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그러므로 참된 회개는 자신을 끝없이 벌하는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보혈 앞에서 거짓된 정죄를 내려놓고 은혜를 다시 받아들이는 순종이다.
여기서 믿음은 감정의 고양보다 더 단단한 태도가
된다. 마음이 평안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먼저 선언되었기에 흔들리는 마음을 그 말씀 아래 두는 것이다. 장재형 목사의 설교는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셨다는 사실을 신앙의 기초로 되돌려 놓는다. 내가 하나님을 붙든 힘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붙드신 은혜가 구원의 근거라면,
자기 정죄는 더 이상 영혼의 주인이 될 수 없다.
요한복음 8장의
간음한 여인 이야기는 이 복음의 빛을 선명하게 비춘다. 사람들은 돌을 들고 정죄의 자리에 섰지만, 예수께서는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하셨고, 마침내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라고 선언하셨다. 죄 없으신 분이
정죄하지 않으셨다면, 죄인이 죄인을 향해 드는 돌은 얼마나 쉽게 내려놓아야 하는가. 이 말씀 앞에서 믿음은 자신을 향한 돌뿐 아니라 타인을 향해 들었던 돌까지 조용히 내려놓는다.
그리스도의
중보 앞에서 사랑은 두려움을 잃는다
로마서 8장 34절은 성도의 확신을 한층 더 깊은 자리로 이끈다.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계시며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신다는 사실은, 구원이 과거의 사건으로만
머물지 않음을 보여 준다. 십자가는 죄의 값을 치른 은혜의 자리이며,
부활은 사망의 권세가 끝났다는 소망의 표지다. 그리고 지금도 주님은 성도를 위하여 중보하시는
대제사장으로 계신다.
이 중보는 기도가 잘되는 날에만 필요한 위로가
아니다. 오히려 기도가 막히고, 마음이 무너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자격이 없다고 느끼는 순간에 더욱 선명해지는 복음이다. 성도는
자기 언어가 빈약해질 때도 완전히 버려지지 않는다. 우리보다 앞서 하나님 앞에 서 계신 그리스도의 간구가
있기 때문이다.
설교는 이 중보의 의미를 재판정의 이미지로
풀어낸다. 우리는 스스로를 변호할 말이 부족한 피고처럼 설 때가 많지만,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변호자로 서 계신다. 율법의 눈으로 보면 드러날
죄가 있으나, 주님은 이미 자신의 피로 그 값을 치르셨다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누가 정죄하리요”라는 바울의 질문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현재적 중보 위에 세워진 담대한 고백이 된다.
이 확신은 개인의 평안에서 멈추지 않는다. 정죄에서 풀려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증명하려 하지 않는다. 자신이 용납받은 깊이를 아는 사람은 공동체 안에서도 용납과 회복의 언어를 배운다. 사랑은 복음의 장식이 아니라, 은혜가 삶에서 맺는 가장 조용하고도
분명한 열매다.
흔들리는
날에도 소망은 하나님의 편에 선다
성도의 견인은 흔들림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흔들림 속에서도 하나님이 붙드신다는 말이다. 신자는 여전히 넘어질
수 있고, 기도가 막힐 수 있으며, 마음의 어두운 결을 마주할
수 있다. 그러나 그때마다 성경 묵상은 우리를 자기 판단의 감옥으로 밀어 넣지 않고, 하나님의 판결 앞으로 다시 데려간다.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는 말씀은 영혼의 마지막 언어가 인간의 비난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려 준다.
그러므로 샬롬은 상황이 조용해져서 생기는 평온이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이시라는 복음의 사실이 마음 깊은 곳에 뿌리내릴 때 생기는 안식이다. 이 안식은 현실을 부정하지 않고도 두려움에게 최종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고 내어주신 하나님이 성도를 향한 사랑을 철회하지 않으신다는 확신이, 흔들리는 하루를
다시 걷게 한다.
이 설교가 오늘의 믿음에 남기는 유익은 분명하다. 구원의 확신은 영적 자만이 아니라 감사의 뿌리이며, 회개는 절망의
습관이 아니라 은혜로 돌아가는 문이다. 정죄 없음의 복음을 깊이 묵상하는 사람은 자기 안의 두려움을
다루는 법을 배우고, 동시에 다른 사람을 향해 더 느리고 조심스러운 사랑을 배운다. 복음은 마음의 은밀한 법정에서 시작되지만, 결국 우리의 언어와 관계와
순종의 방식까지 바꾸어 간다.
또한 말씀은 두려움을 부정하지 않고 방향을
바꾼다. 바울의 질문은 성도가 겪는 환난과 약함을 지워 버리지 않는다.
다만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의 더 큰 사랑 안에 놓아 보게 한다. 그러므로 신앙의 담대함은
자신을 강하게 보이려는 태도가 아니라, 약함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를 위하신다는 사실을 붙드는
겸손한 용기다.
말씀의 결론은 단순하지만 깊다. 구원은 하나님이 시작하셨고, 그리스도께서 피로 확증하셨으며, 지금도 중보하시는 사랑 안에서 붙들리고 있다. 그래서 믿음은 “나는 왜 이렇게 연약한가”라는 질문에 갇히지 않고, “이토록 연약한 나를 하나님은 어떻게 끝까지 붙드시는가”라는 묵상으로
옮겨 간다. 정죄의 소리가 멈춘 자리에서, 우리는
비로소 사랑의 언어를 배운다. 오늘 우리의
마음속 법정에는 어떤 목소리가 가장 크게 울리고 있는가. 그리고 그 소리보다 더 깊은 곳에서, 하나님이 이미 들려주신 은혜의 판결을 우리는 다시 듣고 있는가.
장재형목사 공식 홈페이지 www.davidjang.org
장재형목사 설교 동영상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