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류길홍] 단체표준심의회, 이제는 '심사'가 아니라 '지원과 촉진'으로 혁신해야 한다.

▲류길홍/경기대학교 서비스경영전문대학원 겸임교수 ⓒ한국공공정책신문

 [한국공공정책신문=김유리 기자]  우리나라 산업 경쟁력의 중요한 기반 가운데 하나가 표준이다. 표준은 단순한 기술문서가 아니다. 기술을 공유하고, 품질을 높이며, 기업 간 신뢰를 형성하고, 국제시장으로 진출하는 기반이다. 특히 단체표준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만드는 규제가 아니라 산업계가 자율적으로 합의하여 만들어가는 민간 중심의 표준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욱 크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 제도는 '단체표준 심사 및 관리'가 아니라 '단체표준 지원 및 촉진'​을 지향하고 있다. 이 명칭에는 제도의 철학이 담겨 있다. 산업계가 우수한 단체표준을 개발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표준이 신속하게 산업 현장에 보급되도록 촉진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단체표준심의회의 역할 역시 분명해야 한다.

심의회는 표준 제정을 어렵게 만드는 기관이 아니라, 보다 완성도 높은 표준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전문기구여야 한다. 심의는 개발기관을 평가하거나 통제하는 절차가 아니라,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품질을 높이는 과정이어야 한다.

 

그러나 현장의 목소리는 다르다.

많은 표준 개발기관들은 "표준을 만드는 것보다 심의를 통과하는 것이 더 어렵다"고 말한다. 수개월 또는 수년에 걸쳐 산업계 전문가들이 합의하여 마련한 표준안이 명확한 기준 없이 반복적인 보완 요구를 받거나, 심의위원의 해석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받는 사례가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심의가 산업 발전을 지원하는 과정이 아니라 산업 발전을 지연시키는 절차로 인식된다면, 이는 제도의 본래 목적과 거꾸로 가는 것이다.


가장 먼저 개선해야 할 것은 심의기준의 표준화이다.

현재 심의는 중복성, 형식성, 합의성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각각의 판단 기준이 구체적으로 정리되어 있지 않으면 동일한 안건이라도 심의위원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다. 어떤 위원은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사항을 다른 위원은 보완 대상으로 판단한다면 산업계는 무엇을 기준으로 표준을 작성해야 하는가.

심의는 사람을 신뢰하는 제도가 아니라 기준을 신뢰하는 제도여야 한다.

따라서 중복성, 형식성, 합의성에 대한 세부 심의기준을 체크리스트 형태로 공개하고, 모든 심의는 그 기준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기준을 벗어난 의견은 개선 권고로 제시할 수는 있지만 심의 결과를 좌우하는 판단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다음으로 반드시 혁신해야 할 부분은 심의위원의 전문성이다.

심의위원은 단순히 회의에 참석하여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이 아니다. 산업계가 오랜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 만든 단체표준의 완성도를 최종적으로 검증하는 전문가이다. 따라서 심의위원에게 요구되는 수준은 일반적인 기술지식이 아니라 표준화 전문성이어야 한다.


특히 모든 심의위원은 단체표준의 서식과 작성방법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표준은 일반 보고서와 다르다. 적용범위, 인용표준, 용어와 정의, 요구사항, 시험방법, 표시사항, 참고사항 등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체계에 따라 작성되는 전문 문서이다. 이러한 작성 원칙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면 형식적인 보완 요구가 반복되거나, 반대로 반드시 검토해야 할 사항을 놓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심의위원으로 위촉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다음과 같은 교육을 의무적으로 이수해야 한다.

- 표준의 서식과 작성방법

- KS 및 ISO·IEC 국제표준 작성규칙

- 중복성·형식성·합의성 심의기준

- 표준화 정책과 국가표준체계

- 이해충돌 방지와 심의윤리

- 회의 운영과 합의 형성 기법

교육은 위촉 이전의 기본교육과 위촉 이후의 정기 보수교육으로 구분하여 운영하고, 교육 이수 여부를 재위촉의 필수 조건으로 삼아야 한다.

 

더 나아가 심의위원 운영방식 자체를 개혁해야 한다.

현재와 같이 제한된 인원의 심의위원이 다양한 산업 분야를 모두 심의하는 방식은 전문성 확보에 한계가 있다. 기계, 전기전자, 화학, 바이오, 의료, 정보통신,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환경, 서비스 등은 기술 특성과 국제표준 체계가 서로 다르다. 모든 분야를 동일한 심의위원이 판단하는 것은 현실적으로도, 전문성 측면에서도 적절하지 않다.

 

이제는 분야별 전문가 풀(Pool) 제도​를 구축해야 한다.

산업 분야별 전문가를 충분히 확보하여 심의위원 풀을 구성하고, 심의 대상 표준의 기술 분야에 맞는 전문가를 선정하여 심의하도록 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국제표준 활동 경험자, 시험·인증 전문가, 산업계 실무 전문가 등을 함께 참여시켜 심의의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


또한 심의위원 역시 평가받아야 한다.

심의의 일관성, 전문성, 근거 제시의 적절성, 심의기간 준수, 산업계 만족도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고, 그 결과를 재위촉에 반영해야 한다. 권한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원칙은 심의위원에게도 예외일 수 없다.

무엇보다 심의회의 성과를 평가하는 기준부터 바뀌어야 한다.


얼마나 많은 문제를 지적했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우수한 단체표준이 공정하고 신속하게 산업 현장에 보급될 수 있도록 지원했는가가 심의회의 성과가 되어야 한다. 지원과 촉진을 목적으로 하는 제도가 규제와 지연으로 평가받는다면 그것은 제도의 실패이다.

대한민국은 기술 패권 경쟁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제 표준은 선택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이며 산업 전략이다. 심의회가 혁신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면 산업 경쟁력도 함께 늦어질 수밖에 없다.

단체표준심의회는 심사기관이 아니다. 산업계가 더 좋은 표준을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하고, 우수한 표준이 신속하게 보급되도록 촉진하는 전문기구이다.


이제 심의회의 역할도 달라져야 한다. 명확한 심의기준, 체계적인 심의위원 교육, 표준 작성방법에 대한 전문성 확보, 분야별 전문가 풀 운영, 심의위원 역량평가​를 통해 심의회는 산업 발전의 걸림돌이 아니라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단체표준 지원 및 촉진'​이라는 이름에 담긴 진정한 의미이며, 우리 산업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이는 가장 현실적인 개혁의 출발점이다.




류길홍 

경기대학교 서비스경영전문대학원 겸임교수

한국품질진흥원(KSQ) 본부장

한국공공정책신문 이사




작성 2026.07.12 20:58 수정 2026.07.12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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