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재구성] 아침 일찍 시장실 찾아와 "나대지 말라" 면박 준 시의원들
최근 울산시의회 일부 의원들이 아침 일찍 시장실을 찾아 단체장을 향해 "관종이다", "유튜브 정치 그만하라", "시장 된 지 얼마 됐다 개혁을 논하느냐, 6개월 정도는 가만히 있으라"는 고압적인 면박을 준 사실이 알려져 파장이 일고 있다. 단체장이 행정 투명성 확보를 위해 시장실 CCTV 설치 및 집행 과정 전면 공개를 추진하자, 도리어 감시 주체여야 할 의회가 이를 막아서며 공개를 억제하려 한 것이다.
주객이 전과된 지방의회… "투명 행정이 그토록 두려운가"
최근 울산광역시에서 벌어진 일련의 풍경은 대한민국 지방자치가 처한 씁쓸한 민낯을 여실히 드러냈다. 시장실의 문을 열고 행정 과정 전체를 주민들에게 솔직하게 공개하겠다는 단체장의 개혁 의지에 대해, 지원하고 격려해야 할 지방의회가 도리어 찾아와 "나대지 말라"며 길들이기식 압박을 가한 사건이다.
지방의회의 존재 근거이자 본연의 소명은 단체장과 집행부에 대한 '견제와 감시'다. 무소불위의 행정 권력이 밀실에서 독단적으로 행사되는 것을 막고, 정보 공개를 강력히 요구하여 주민의 알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의원들에게 부여된 주된 임무다.
그러나 이번 사태에서 나타난 시의원들의 행태는 완벽히 주객이 전과(主客顛倒)되어 있다. 단체장이 스스로 시장실에 CCTV를 달고 모든 업무를 투명하게 오픈하겠다는데, 감시를 해야 할 의회가 되려 "왜 다 오픈하느냐", "가만히 있으라"며 태클을 걸었다. 행정이 담장을 허물고 밖으로 나오려 하자, 감시자 역할을 해야 할 의회가 담장을 다시 높게 쌓으라고 호통을 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행정을 하는 사람들은 자꾸 감추려 하고, 의원들은 자꾸 공개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정상적인 의정이다. 단체장이 스스로 모든 것을 오픈하겠다는 것은 깨끗하고 청렴한 시장을 하겠다는 의지이자 민주도시를 만들겠다는 선언인데, 의회가 도리어 이를 억제하려는 것은 지방자치의 본질에 역행하는 일이다.
'풀뿌리 민주주의' 구호 뒤에 숨은 기득권의 보신주의
지방자치가 부활한 지 30여 년이 지났음에도 주민들이 지방 정치를 불신하는 근본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 지방의원들은 선거철마다 '풀뿌리 민주주의 실현'과 '주민 밀착형 의정'을 외친다. 그러나 정작 주민 소통을 강화하고 일하는 방식을 혁신하려는 단체장의 개혁 시도에 대해서는 '유튜브 정치', '관심종자(관종)'라는 저급한 프레임을 씌워 폄훼하기 일쑤다.
새로운 시도와 행정의 투명화는 기존의 밀실 다툼과 비공식적 권력 구도를 흔든다. 자신들의 기득권과 영향력이 줄어들까 두려워하는 보신주의적 사고가 아니고서야 이런 반응을 설명하기 어렵다. "취임한 지 얼마 됐다고 개혁을 얘기하느냐"는 발언은, 지방의회가 시정 혁신의 파트너가 아니라 변화를 가로막는 '관성적 브레이크'로 전락했음을 스스로 자인한 꼴이다.
'반대를 위한 반대'가 초래하는 지방자치의 고사(枯死)
지방의회는 단체장의 정치적 정적이 되어 무조건적인 딴지를 거는 기관이 아니다. 합리적 대안 없는 '반대를 위한 반대'와 권위주의적 기싸움은 지방 행정의 동력을 실종시키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지역 주민들에게 돌아간다.
소통 창구를 다변화하고 행정의 빗장을 푸는 것은 시대적 요구이자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다. 단체장의 소통 방식을 비판하려면 정책의 실효성과 주민 이익을 기준으로 삼아야지, 소통 방식 자체에 시비를 걸며 "6개월간 가만히 있으라"는 식의 압박을 가하는 것은 자치 의정의 수준을 스스로 떨어뜨릴 뿐이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진짜 주인은 '주민'이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주인은 의원도, 시장도 아닌 '주민'이다. 주민에게 시정의 문을 넓히겠다는 시도를 억누르고 '조용히 가만히 있으라'고 강요하는 지방의회는 대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변화를 거부하고 투명성을 두려워하는 지방의회의 소모적 권력 행사야말로 풀뿌리 민주주의를 고사시키는 가장 큰 위협이다. 지금이라도 지방의회는 감추기에 급급한 '발목 잡기'에서 벗어나, 참된 주민 알권리와 지역 혁신을 위한 진정성 있는 의정 활동으로 돌아와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