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가 끝날 무렵, 아이가 색연필과 공책 등 한 꾸러미를 들고 왔습니다.
"이 선물 누가 준 거야? 엄마가 사준 거니?"
아이는 대답합니다.
"아니. 학교에서 준 거야. 담임선생님이. 다른 친구들도 다 받았어.“
적잖은 충격이었습니다. 담임선생님이 선물을 나눠준다는 게 새삼 놀랍더군요. 오래전에 들었던 학교 앞 문방구가 예전만 못한 이유도 대부분의 준비물을 학교에서 제공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두 아이는 각각 유치원, 학교에서 다양한 체험활동도 합니다. 어린이날 같은 기념일마다 선물을 받아오고, 여러 만들기 활동을 한 작품들도 가져옵니다. 처음에는 칭찬해 주고 함께 기뻐했습니다. 하지만 횟수가 반복되면서 집에는 소위 ‘예쁜 쓰레기’가 쌓여 갔습니다.
아이들이 너무 많은 것을 아무렇지 않게 받고 있다는 게 눈에 들어옵니다. 풍요함 자체를 탓하려는 게 아닌, 이런 상황에 너무 익숙해져 모든 게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건 아닐까 싶어집니다.
물론 몽당연필에 볼펜 깍지를 끼워 쓰고, 지우개가 다 닳도록 쓰던 시절로 돌아가자는 건 아닙니다. 부족했던 시대를 미화하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다만 물건이 귀했던 시절에는 하나의 물건에도 시간이 담겼습니다. 오랜 시간 아껴 쓰면서 정이 들었고 물건과 함께한 추억이 깃들었죠. 물건을 소유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안에 경험이 쌓일 자리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어떤가요.. 새로운 게 너무 빨리 나오고, 쉽게 소비되고, 금세 다른 것으로 대체됩니다. 물건은 넘쳐나지만, 그 물건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애착을 쌓을 기회는 오히려 줄어든 것은 아닐까 싶었습니다.
이번 주 출판기념식에서 함께성장연구원 정예서 원장은 "AI 시대에 인간을 대체할 수 없는 것은 결국 경험"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이야기가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아이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것은 더 많은 물건이 아니라, 하나를 깊이 사랑하고 오래 아끼며 그 안에서 경험을 만들어 가는 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모인 저 역시 아이들에게 무엇을 더 사줄지를 고민하기보다, 이미 가진 것과 충분히 오래 관계 맺는 경험을 어떻게 만들어 줄지 고민해 보려 합니다. 그 작은 경험들이야말로 AI도 대신할 수 없는, 한 사람의 삶을 단단하게 만드는 자산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