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준 나만의 달란트
창조주 신은 모든 사람에게 각자의 달란트를 준다고 믿어왔습니다.
그것도 통일되고 일관된 달란트가 아니라 개인에게 특화된 특별한 달란트를 준다고 생각합니다.
신이 저에게 준 달란트는 ‘귀가 얇은’ 달란트를 주었습니다.
어린 시절 저는 친구들과 사이좋게 놀다가도 잘 삐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가족들 사이에서도 잘 삐졌습니다. 좀 더 성장해서 보니 저는 귀가 참 얇았습니다. 상대적으로 더 얇았습니다. 충분히 할 수 있을 만한 대화들 속에서도 속으로 상처받고 삐지고 했던 것 같습니다. 성인이 되고 난 다음 알았습니다. 저는 참 귀가 얇은 아이였구나.
성인이 된 후에는 행여나 그 얇은 귀를 들킬까? 애써 감추려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직장 생활 속 수많은 관계와 대화 속에서 저의 성향은 어김없이 드러나곤 했습니다. 생각해보니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언젠가 추석 명절 고향 가는 길에 있었던 일입니다."
추석 때 고향 가는 길이었습니다. 추석 명절 고향 가는 길, 고속도로가 언제가 정체이기에 휴게소를 들렀습니다. 경부고속도로 하행선 칠곡휴게소였습니다. 해는 어두워지고 휴게소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나오는데, 어떤 이가 저의 팔을 붙잡습니다.
“저기요. 혹 고향 가는 길이시면, 여기 좋은 물건이 있는데 한번 보세요”
“아, 아니요. 저는 빨리 고향에 가야 해서 가야 해요”
“아니요, 사실은 제가 일하는 회사에서 명절에 급여가 밀려서 직원들에게 물품을 그냥 주었어요. 갈치인데 너무 좋아요. 이거 팔아서 고향 가려고요. 잠깐만 보세요. 안 사도 돼요”
나도 모르게 그분에게 이끌려 냉동탑차에까지 이러렇습니다. 그리고 잠시 지난 다음 고향집 앞에 도착해서 엄마에게 이야기합니다.
“엄마, 엄청 싱싱하고 좋은 갈치를 싼 가격에 샀어요”
갈치를 본 어머니께서 혀를 차십니다.
“이거 얼마주었어?”
“왜요?”
“야야. 이거 밑에 봐라, 다 상했다. 쯧쯧”
어둑어둑한 밤에, 명절에 급여를 받지 못했다는 스토리에 귀가 얇아져 한 박스도 아니고 몇 박스를 구매했었더랍니다. 이런 일 자주 있습니다.
몇 년 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지요. 독일 연수를 갔다가, 시간이 여유 있어 베를린 시내를 관광하고 있었습니다.
유럽의 집시들이 흔한 말로 야바위를 하는데, 잠깐 구경하고 있었다가, 나도 모르게 지갑이 술술 열려서 몇십 달러를 날렸던 기억이 납니다.
국제 호구가 된 것처럼 저의 귀 얇은 달란트의 스토리는 끊임이 없습니다.
이렇게 귀 얇은 제게 안 좋은 일들만 있었느냐?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좋은 선배들, 좋은 동료들, 좋은 후배들을 만나면 놀라운 일이 생깁니다.
제 마음에서 옳다. 좋다, 배움이 있다. 생각이 들면 쏘오옥 빨려 들어갑니다. 귀 얇은 은사는 놀랍게 발휘됩니다. 어느 정도 빨려 들어가느냐 하면, 말투와 웃음소리까지 의도하지 않는데도 닮아갈 때가 있습니다. 일하는 방식,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저는 특히나 많은 것을 배웁니다. 이 쯤되면 귀 얇음이 신이 준 달란트가 맞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 귀 얇음으로 오늘까지 제가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 동료들, 상사들한테서 참 많이 배우는 유형입니다.
이러한 성향은 책이나 드라마를 마주할 때도 어김없이 발휘됩니다. 좋은 문장과 대사를 만나게 되면 눅눅한 방에 강력 제습기가 물기먹은 방 습기를 빨아들이듯, 놀랍도록 빨아들입니다. 감명 깊은 구절은 어느덧 제 삶과 맞물려, 마치 제가 처음 지어낸 말처럼 제 안에서 창조적으로 재탄생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저의 경험과 물려서 마치 제가 처음 그 말을 한 것 같은 창조의 영역으로 이동합니다. 놀라운 귀 얇음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배움이 있는 관계에서는 귀 얇음으로 나도 성장해 왔던 것 같은데, 배움이 있지 않다. 정말 옳지 않다, 권모와 술수가 난무할 때 그 난무함에 함께 호응하지 못할 때, 저의 귀 얇음은 이때도 등장합니다.
어떻게 등장할까요? 말 한마디 한마디, 시선 하나하나, 행동 하나하나가 “귀와 눈을 뚫고 들어와 단숨에 가슴 정중앙에 꽂혀버립니다. 그럴 때마다 제 마음에 걸림이 생김니다.
웃음기도 없어집니다. 젊은 시절엔, 이러한 부정적 귀 얇음의 반대작용으로는 참다 참다 폭발하거나, 이직을 선택해 왔습니다. 같은 공간에서 의식하지 않는다는 것이 신이 준 달란트로 인해 그게 잘 안됩니다. 제 마음에서 치워버리거나, 제 귀에서 막아버리는 것인데 그게 참 안되더라고요.
귀 얇음이 시장에서 구입한 물건이라면 이게 뭐라고 애지중지하겠습니까? 그냥 버려버리고 안 보면 되지요. 그런데 그게 그렇게 잘 되지 않습니다.
귀 얇음은 신이 준 달란트이니 제가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닌듯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불편해했던 상황을 아무런 중간 과정의 전환과정 없이 처세에 따라 아무렇지도 않게 하하호호 하는지 저는 잘 안됩니다.
'슬기로운 사회생활' 같은 학교에 다시 들어가야 하나 싶습니다. 저의 귀 얇음은 결국 의미 부여를 함에서 시작하는데, 배울 것이 없다라고 생각이 되면 아무런 의미 부여가 되지 않습니다. 귀 얇은 달란트가 특화되다 보니, 상대방의 상황과 처지가 잘 보입니다. 이랬다 저랬다 조삼모사하는 경우들을 만나면 참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합리화하는 모습들을 참 보기가 좋지 않습니다.
물론 제 마음도 사정없이 움츠러듭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묻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젓습니다. 부조리한 일에 둔감해지고 부정직한 사람들과 하하호로 웃어넘기는 '슬기로운 사회생활'의 기술을 익히느니, 차라리 상처받고 마음에 걸림이 있어, 움츠러드는 쪽을 택하겠습니다. 귀 얇고 예민한 제 마음이, 아직 제가 무뎌지지 않고 진심으로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증거일 테니까요."
여러분에게 신이 준 달란트는 어떻게 작동되고 있나요?
#달란트 #귀얇음 #진심
■ 저자 소개
▷ 대표 이력 : 26년간 사회복지사로 민간, 공공, 행정기관에서 일함.
진심 담은 삶의 이야기 글쓰기 작가
▷ 대표작 : 『대한민국에서 사회복지사로 산다는 것』, 『서울 하늘에 UFO가 등장하면 누가 담당인가요?』 저자
▷ 이메일 등 :
bibleprey@hanmail.net, https://www.facebook.com/biblepr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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