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공공정책신문=김유리 기자] 드라마 <맨 끝줄 소년>이 처음부터 흥미로웠던 것은, 이 드라마의 주인공도 나처럼 강의실 맨 끝줄에 앉는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맨 끝줄은 타인에게 자신은 덜 보이면서 전체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자리다. 그 자리에서 주인공 소년은 모두를 관찰하고 있었다. 이 드라마는 공개 직후부터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주인공 최민식의 연기력 파워 덕도 있지만, 주제의 톡특함 때문이 아닐까? 표면적으로는 문학의 형식을 지녔지만 그 안에 담긴 타인의 삶을 훔쳐보는 욕망, 바로 관음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첫 소설 출간 이후, 20년째 작품을 내지 못해 열등감에 빠져있는 국문과 교수와 그의 강의실 맨 끝줄에 늘 앉아 있는 학생이다. 교수는 친구 집에 얹혀사는 그 학생에게 그 집에서 일어나는 일을 몰래 관찰하고 글을 쓰라는 과제를 제시하고 그것에 지나친 관심을 가진다. 알고 보니 그 집의 여자는 교수가 젊은 날 짝사랑했던 여자였고, 그 집의 남자는 교수의 동창으로 그와는 다르게 잘 나가는 베스트셀러 작가였다. 교수는 학생의 글을 통해 그 가정의 내밀한 속사정과 서서히 파탄 나는 그집 부부의 관계를 훔쳐보며 즐긴다. 교수는 매번 ‘다음에 계속’으로 감질나게 끝나는 학생의 글에 중독되어 다음 회차를 기다리는 독자처럼 그 서사의 늪에 빠진다.
그런데 우리 역시 이런 일을 매일 하고 있지는 않을까? 유튜브, 트위터, 블로그에서, 인스타그램 피드나 릴을 통해 남의 글과, 사진, 영상 등을 보고 듣고 읽으면서 타인의 일상과 행적을 훤히 들여다보면서 즐기고 있지는 않은가? 마치 드라마 속에서 학생이 친구 집에 은밀한 시선을 보내듯, 우리는 스마트폰 화면에 호기심 어린 시선을 던지며 말이다.
현대 사회의 SNS는 이러한 관음을 새로운 문화로 만들었다. 팔로우 버튼이나 구독 버튼만 누르면 타인의 사생활을 누구나 마음껏 소비하며 즐길 수 있고, 단지 눈팅만이 아니라 이모니콘을 보내거나 댓글을 쓰는 등 적극적 활동을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가 보고 듣는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타인의 갈등과 불행을 연료삼아 이에 불을 내지르기까지 한다. 내밀하고 비밀스러운 개인의 일상이 파격적인 콘텐츠가 되고, 심지어 눈요기를 위해, 왜곡되고 조작된다. 이미 당사자의 동의나 안전은 부차적인 것으로 밀려난지 오래다. 그렇다면 그것을 즐기며 공감을 누르고 댓글을 달며 호들갑을 떠는 대중은 과연 잘못이 없을까? SNS 과몰입된 대중은 콘텐츠가 상식과 도덕의 선의 금을 밟고 법의 영역을 넘어서도 그것에 집착해서 과하게 즐겨 찾는 이상 행동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드라마 <맨 끝줄 소년>이 던지는 질문은 결국 하나로 수렴한다.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교수의 관음이 결국 파멸로 결론나듯이 타인의 삶을 관찰하는 자 역시 공범이다. 교수는 학생의 원고를 읽는 행위만으로 누구도 다치게 하지 않는다고 믿었지만, 그의 시선이 만들어낸 기대와 갈증은 학생으로 하여금 더 자극적인 장면을 만들도록 했다. 우리의 SNS도 수요자의 요청에 따라 관음적 충동을 자극하도록 기획되지 않는가? 관찰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보는 행위 자체가 이미 콘텐츠의 방향을 설계하고, 그 요구에 응답하는 또 다른 누군가의 삶을 왜곡시키기 때문이다.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사생활 폭로 영상에 대중의 눈은 먼저 가고, 연예인의 불행이나 인플루언서의 다툼에 앞다투어 댓글을 남기고, 타인의 고통이 ‘떡밥’이라는 이름으로 소비되는 순간들. 조회수와 ‘좋아요’는 교수가 학생의 원고를 기다리며 느꼈던 그 은밀한 갈증과 정확히 같은 자리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콘텐츠를 만든 적 없다고, 그저 지켜봤을 뿐이라고 자신을 변호하지만, 관음의 생태계는 지켜보는 이들의 총합으로 완성되지 않은가?
드라마의 결말이 보여주듯, 훔쳐보는 자는 끝내 자신이 훔쳐본 삶의 붕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타인의 서사에 몰입한 대가로 교수가 잃은 것은 자신의 시간이자 자기 자신이다. 우리 역시 다르지 않다. 매일 타인의 피드를 넘기며 소비한 시간만큼, 정작 자신의 서사를 채워갈 시간은 사라진다. 이 드라마가 불편한 이유는 관음이 특별한 소수의 일탈이 아니라, 스마트폰을 든 우리 모두의 습관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정면으로 응시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화면을 넘기고 있는 손가락을 잠시 멈추고, 그 시선의 끝에서 우리가 무엇을 훔쳐보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때가 아닌지 생각해 보자.
이진희
서울대학교 대학원 졸업(교육학박사)
(현) 진해세화여자고등학교 교장
(전) 서울대학교 강사
(전) EBS 수능윤리 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