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는 코엑스 근처의 한 호텔에서 하루를 묵었습니다. 최근에도 주말 이틀에 걸쳐 일정이 잡힌 적이 몇 번 있었지만, 그때마다 기차를 타고 늦게라도 집으로 돌아와 그다음 날 다시 올라왔습니다. 이번에는 유효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숙박권 덕분에, 모처럼 하루 머물기로 했습니다.
저는 호텔에 묵으면 웬만하면 그 안에서 시간을 보내는 편입니다. 밥도 먹을 수 있고, 운동도 할 수 있고, 수영도 할 수 있으니 가능한 한 호텔 안에 오래 머무는 것이 저 나름의 '호캉스 가성비'를 뽑는 방법이거든요.
그날 해야 할 일을 다 끝내고 호텔에 도착해서 짐을 내려놓자마자 라운지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었습니다. 이후 잠깐 쉬다가 소화도 시킬 겸 수영을 하러 갈 생각이었습니다. 이왕 호텔에 왔으니 당연히 모든 시설을 이용해봐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방으로 돌아와 앉으니 그제야 피곤이 올라왔습니다. 수영해야겠다는 마음을 고이 접고 욕조에 물을 받아 반신욕을 했습니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있으니 금세 노곤해졌고, 그러다 보니 밤 아홉 시가 조금 넘은 비교적 이른 시간에 그냥 잠이 들었습니다.
호텔에서의 밤이라면 이제부터 뭔가를 해볼 수도 있는 시간인데, 저는 그날을 아주 일찍 끝내버린 셈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참 좋았습니다.
조금 전까지 운동을 하겠다고 생각해 놓고, 피곤하니 안 가기로 하고, 반신욕을 하다가 졸리면 그냥 자버리는 것. 누구에게 물어볼 필요도 없고, 미안해할 일도 없는 것.
혼자 있는 시간이 좋은 이유 중 하나는 아마 이런 데 있을 겁니다.
그런데 호텔을 예약해 둔 뒤로 거의 2주 동안, 저는 또 한편으로 계속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 좋은 시간을 누구와 나누면 좋을까.
좋은 공간에 혼자 있으면 가끔 혼자만 누리기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도 그렇고, 마음에 드는 작품을 볼 때도 그렇습니다. 제가 좋다고 느낀 것을 아끼는 사람과도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생깁니다.
이번에도 몇 사람의 얼굴을 떠올렸습니다.
이 사람과 같이 있으면 어떨까.
아니야. 이 사람과 함께라면 이런 부분이 조금 신경 쓰일 것 같고.
그러면 저 사람은?
그 사람과는 또 다른 무언가를 맞춰야 할 것 같고.
머릿속으로 몇 사람을 불러왔다가 다시 돌려보냈습니다.
같이 저녁만 먹자고 할까.
라운지에서 잠깐 시간을 보내다 가라고 할까.
아니면 함께 머물자고 해도 괜찮을까.
생각은 꽤 오래 했는데 결국 아무에게도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 곰곰이 돌아보았습니다. 처음에는 역시 제가 혼자 있는 것이 편해서 그런가 보다 했습니다.
실제로 저는 혼자 여행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혼자 미술관을 돌아다니는 것도 좋고, 혼자 밥을 먹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분명 같이 있고 싶기도 했으니까요. 좋은 공간을 같이 경험하고 싶었고, 맛있는 것도 함께 먹고 싶었습니다.
무엇보다 누군가와 함께한 경험에는 혼자 한 경험과 조금 다른 것이 남습니다.
"그때 거기 정말 좋았지."
그 말 한마디로 이미 지나간 시간이 다시 살아나기도 합니다.
한 사람의 기억 속에만 있던 장면이 두 사람의 기억 속에 들어가면, 그 경험을 다시 꺼내줄 사람이 한 명 더 생깁니다. 저는 그 점이 참 좋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저는 그날 밤처럼 살고 싶기도 했습니다.
운동을 하겠다고 했다가 갑자기 하지 않아도 되고,
이야기하다가 피곤하면 먼저 자러 들어가도 되고,
말하고 싶지 않을 때에는 오래 말하지 않아도 되고,
각자 다른 것을 하다가 다시 만나도 되는 것.
제 선택 때문에 상대가 불편해하지 않을까 계속 살피지 않아도 되고, 상대를 신경 쓰느라 제 마음을 자꾸 바꾸지 않아도 되는 것.
생각해보니 제가 원했던 것은 '혼자'와 '함께' 중 어느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함께 있어도 내 리듬을 지나치게 조정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에 더 가까웠습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시인을 꿈꾸던 한 청년에게 보낸 편지가 떠올랐습니다. 릴케는 그의 시를 평가하는 대신 고독과 사랑에 대해 답했는데, 그중에 성숙한 관계란 두 사람의 고독이 서로를 지키고 경계를 존중하며 마주하는 일에 가깝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가까워진다는 것이 서로의 고독을 없애는 일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같이 있다고 해서 계속 이야기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
같은 공간에서 한 사람은 책을 읽고, 한 사람은 음악을 들어도 되는 관계.
한 사람은 산책을 나가고, 한 사람은 방에 남아 있어도 그것을 서운함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관계.
제가 원하는 여행을 떠올려 봐도 그렇습니다. 같은 도시까지 함께 갔지만 각자의 속도로 걸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같은 미술관에 들어가서도 저는 이 그림 앞에 오래 머물고, 다른 사람은 저쪽 방에서 전혀 다른 작품을 보고 있어도 좋겠습니다.
그러다 한참 뒤에 다시 만나 묻는 겁니다.
"오늘 뭐가 제일 좋았어?"
제가 그냥 지나친 작품을 그 사람은 오래 바라보았을 수도 있고, 제가 보지 못했던 거리의 작은 장면을 그 사람은 기억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각자의 시간을 보냈는데도 혼자였을 때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게 됩니다.
아마 제가 바라는 '함께'는 그런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제가 오랫동안 "혼자 있는 걸 좋아한다"고 말해왔지만, 그 말도 아주 정확하지는 않은 듯합니다. 제가 좋아했던 것은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맞추느라 계속 애쓰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었지요.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조정합니다. 시간을 맞추고, 걸음의 속도를 맞추고, 상대의 표정을 살피고, 침묵이 길어지면 일부러 말을 꺼내기도 합니다.
물론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어느 정도 서로에게 맞추는 일일 겁니다. 다만 서로를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조정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함께성장인문학연구원이라는 이름 속 '함께 성장'도, 적어도 저에게는 이런 모습에 조금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늘 함께 있어야 하는 것도, 생각이 같아야 하는 것도, 같은 속도로 움직여야 하는 것도 아닐 겁니다.
각자의 삶에서 충분히 보고, 읽고, 느끼고, 생각하다가 때때로 만나 자신이 발견한 세계를 서로에게 건네는 것. 내가 보지 못한 것을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 보고, 내가 가진 생각도 그 사람에게 전하면서 서로의 세계가 조금씩 넓어지는 것. 그러고는 다시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
이번에는 몇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고도 결국 연락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누구와 이 시간을 나누면 좋을지를 오래 생각했던 덕분에, 오히려 제가 어떤 관계를 원하는지는 조금 더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함께 있고 싶기도 합니다. 다만, 함께하기 위해 너무 많이 애쓰고 싶지는 않습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나는 __________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가 좋다.그리고 누군가가 나와 함께 있을 때에는
그 사람도 __________하지 않아도 되었으면 좋겠다.
이번 주말에는 두 빈칸을 한번 천천히 채워보시겠어요?
어쩌면 어떤 관계를 원하는지 안다는 것은
누구와 가까워지고 싶은지를 아는 것뿐 아니라,
그 사람 앞에서 나는 무엇을 애쓰지 않아도 되는지를 아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K People Focus 윤미선 칼럼니스트(ueber35@naver.com)
(함께성장인문학연구원 강사)
케이피플 포커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용 시 표기 의무
■ 제보
▷ 전화 : 02-732-3717
▷ 이메일 : ueber35@naver.com
▷ 뉴스홈페이지 : https://www.kpeoplefocu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