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박동명] 공공기관 이전의 성패는 ‘주소’가 아니라 ‘지역의 삶’에 달렸다

공공기관 2차 이전과 기능개혁, 균형성장의 실질을 만들어야

▲박동명/한국정책연구원 원장 ⓒ한국공공정책신문

 [한국공공정책신문=김유리 기자] 정부가 수도권에 남아 있는 중앙행정기관의 세종 이전과 수도권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을 본격화하겠다고 밝혔다. 2027년 상반기부터 파급효과가 큰 중앙행정기관을 세종으로 이전하고, 수도권 소재 공공기관 350여 곳을 대상으로 올해 4분기 이전계획을 확정해 지방 이전에 착수한다는 구상이다. 동시에 발전 5사 통합, 4개 항만공사 통합, 석유·가스공사 통합 등을 포함해 109개 공공기관을 감축하는 기능개혁도 추진한다.


이는 단순한 청사 이전이나 조직 축소의 문제가 아니다. 수도권 일극 체제를 완화하고 지역소멸 위기에 대응하며, 공공부문의 역할과 효율성을 다시 설계하는 국가적 과제다. 정부가 제시한 ‘수도권 잔류 최소화’, ‘기능적 연관 기관의 집적 배치’, ‘지역 산업·대학 연계’, ‘자족적 정주기반 확충’, ‘속도감 있는 추진’의 원칙은 방향 자체로는 타당하다.


‘이전’보다 중요한 ‘정착’


그러나 기관의 간판과 주소지만 옮긴다고 지역균형발전이 저절로 실현되지는 않는다. 1차 공공기관 이전은 혁신도시 조성과 지역 인프라 확충이라는 성과를 남겼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기관과 지역 산업 간 연결이 약하고 가족 동반 이주, 교육·의료, 문화생활 등 정주 기반이 충분히 갖춰지지 않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공공기관 이전은 결국 사람의 이전이다. 직원이 주중에만 지역에 머물고 가족은 수도권에 남는 구조라면, 지역에 소비·교육·문화·공동체가 뿌리내리기 어렵다. 이전기관 종사자와 가족이 지역에서 안정적으로 생활하고, 자녀를 교육하며,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이전의 파급효과가 지역경제 전반으로 확산된다.


따라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주택 지원을 넘어 교육, 의료, 교통, 돌봄, 문화, 배우자 일자리까지 포괄하는 정주정책을 공동으로 마련해야 한다. 특히 이전기관 직원에게만 혜택이 집중되지 않도록, 기존 주민의 생활 여건과 지역 공공서비스를 함께 개선하는 방식이어야 갈등을 줄이고 정책의 정당성도 확보할 수 있다.


산업과 기관을 함께 설계해야


2차 이전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지역별 ‘기관 유치 경쟁’이 정책의 본질을 대체하는 일이다. 공공기관을 지역에 고르게 나누는 방식은 정치적으로는 쉬워 보일 수 있지만, 기관의 기능과 지역의 산업 기반이 연결되지 않으면 지속 가능한 발전동력이 되기 어렵다.


정부가 기능적 연관 기관의 집적과 지역 산업·대학 연계를 원칙으로 내세운 것은 이런 점에서 중요하다. 예컨대 항만·물류 기능은 항만도시의 물류산업, 해양기술 연구기관, 관련 대학 및 기업과 결합할 때 경쟁력이 커진다. 에너지 관련 기관도 재생에너지 산업단지, 기자재 기업, 전문인력 양성 체계와 연계될 때 지역의 미래산업 생태계를 형성할 수 있다


지방정부 역시 단순히 “우리 지역으로 와 달라”고 요청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이전기관이 지역에 오면 어떤 산업이 성장할 수 있는지, 지역대학은 어떤 전문인력을 양성할 것인지,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은 어떤 협력 기회를 얻게 되는지까지 담은 종합계획을 제시해야 한다. 이전기관은 지역의 고립된 섬이 아니라, 지역혁신의 중심축이 되어야 한다.


통폐합은 숫자가 아니라 서비스다


정부는 전략적 구조개혁, 유사·중복 기능의 일원화, 자회사 및 소규모 기관 통합을 통해 109개 기관을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공공기관의 기능이 지나치게 분산돼 있고 유사 업무가 중복되는 현실을 고려하면, 기능조정과 통합은 피하기 어려운 과제다.


다만 ‘109개 감축’이라는 숫자가 개혁의 성과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기관 수를 줄였지만 현장 서비스가 나빠지고, 책임소재가 불명확해지며, 노동조건이 불안정해진다면 그것은 성공적인 개혁이라 할 수 없다. 공공기관 개혁의 기준은 조직의 크기가 아니라 국민이 체감하는 서비스의 질, 책임성, 접근성, 그리고 재정의 지속가능성에 두어야 한다.


특히 통합 과정에서는 지역별 서비스 공백을 면밀히 점검해야 한다. 항만공사나 에너지 공기업의 통합이 중앙집중형 운영으로 귀결될 경우, 지역 현장의 목소리와 특수성이 정책에서 밀려날 수 있다. 통합법인의 본사 소재지 논의만큼이나 지역본부의 권한, 지역협의체 구성, 주민과 지방의회의 감시 및 참여 장치를 제도화하는 일이 중요하다.


당사자와 지역주민의 참여


기관 이전과 통폐합은 해당 기관 직원에게는 생활 기반의 변화이고, 지역주민에게는 지역의 미래를 좌우할 사안이다. 그런데 정책이 중앙정부의 발표와 기관 간 협의에만 머문다면, 추진 과정에서 불필요한 반발과 사회적 비용을 키울 수 있다.


정부는 이전 대상기관의 노동조합 및 구성원과 충분히 협의하고, 고용승계·처우보호·가족동반 이주 지원을 구체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정부도 일반 직원의 고용승계와 처우 보호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만큼, 이를 선언이 아닌 이행 가능한 협약과 제도로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당사자에게 희생만 요구하는 이전은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무엇보다 이전지역 주민, 지방의회, 시민사회, 지역대학, 상공인 등이 참여하는 숙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주민참여예산이 예산 편성 과정에 시민의 목소리를 담는 제도라면, 공공기관 이전은 지역의 산업·공간·삶을 재구성하는 과정에 시민의 의견을 반영해야 하는 과제다. 이전계획의 수립부터 정주지원, 지역상생사업, 성과평가에 이르기까지 주민 참여와 정보공개를 제도화해야 한다.


성과는 지역이 평가해야


공공기관 이전의 평가는 ‘몇 개 기관을 옮겼는가’가 아니라 ‘지역의 삶이 얼마나 달라졌는가’로 이루어져야 한다. 지역 일자리 증가, 지역기업과의 구매·협력 비중, 산학연 공동사업, 가족동반 정착률, 지역 내 소비와 인구 변화, 주민의 공공서비스 만족도 등을 종합적으로 측정해야 한다.

특히 지방의회는 이전정책의 중요한 감시자이자 협력자다. 지방의회는 집행부의 유치 논리만 추인할 것이 아니라, 이전기관과 지역 간 상생협약의 내용, 지방재정 부담, 정주지원의 형평성, 지역기업 참여 실적, 주민 체감효과를 지속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공공기관 이전이 지역 발전의 기회가 되려면, 지방자치와 주민참여의 역량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


수도권 집중은 더 이상 특정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주택가격, 교통혼잡, 저출생, 청년 유출, 지역소멸이 서로 연결된 국가적 구조 문제다. 공공기관 2차 이전과 기능개혁은 그 구조를 바꿀 수 있는 중요한 출발점이다. 다만 성공의 기준은 기관의 이전 숫자도, 통폐합의 규모도 아니다. 공공기관이 지역에 뿌리내리고 주민의 삶과 지역 산업의 활력을 실제로 높일 때, 비로소 균형성장은 정책 구호를 넘어 대한민국의 새로운 경쟁력이 될 것이다.


박동명

▷법학박사, 한국정책연구원 원장

▷서울특별시 시민참여예산위원장

▷(사)한국공공정책학회 부회장, 상임이사

▷(전)국민대학교 행정대학원 외래교수
▷(전)서울특별시의회 전문위원

<저서> 지방의회 운영 실무 (2026년) 등 다수



작성 2026.09.04 00:59 수정 2026.09.0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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