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형 목사의 고린도전서 11장
설교를 따라, 그리스도를 본받는 믿음이 자유와 질서, 상호
존중과 성찬의 나눔을 어떻게 하나의 복음적 삶으로 엮는지 묵상하고, 교회가 자기 성찰을 통해 사랑의
공동체로 다시 서는 길을 깊이 살펴봅니다.
장재형 목사(올리벳대학교) 고린도전서 11장, 자유를 사랑의 질서로 세우다
쇠문이 열렸다고 해서 한 인간의 감옥이 곧 끝나는 것은 아니다.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이 오래 남기는 질문도 해방 이후의 삶, 곧 자유를 무엇을 위해 사용할 것인가에 있다. 장재형 목사(미국 올리벳대학교 설립)는 고린도전서 11장을 따라, 복음이 준 자유가 사랑의 질서와 이웃을 향한 배려로 이어지지 않을 때 공동체는 오히려 그 자유의 의미를 잃을 수 있음을 비춘다.
이 설교가 붙드는 핵심은 자유를 줄이는 규율이 아니다. 은혜로 얻은 자유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아 가며 공동체를 살리는 힘이 되는가 하는 질문이다. 고린도 교회는 남녀와 신분의 장벽이 흔들리는 놀라운 자유를 경험했지만, 그 자유가 당시 사회의 관습과 충돌하면서 불필요한 오해와 혼란도 낳았다. 말씀의 흐름은 자유를 포기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유가 사랑을 잃지 않도록, 복음이 질서 속에서 보이도록 성숙하라고 권한다.
교회는 은혜 안에서 세상과 다른 공동체가 되지만, 그렇다고 세상과 아무 관계도 없는 공간이 되지는 않는다. 복음의 새로움은 현실의 언어와 관습 한가운데서 드러나야 하며, 그 과정에서 신앙인은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양보할 것인지 분별해야 한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1장의 질문은 단순히 “허용되는가”에 머물지 않는다. “이 선택이 그리스도를 보이게 하는가, 공동체를 살리는가”라는 더 깊은 자리로 우리를 이끈다.
자유가 사랑의 얼굴을 얻는 순간
바울은 고린도전서 11장 1절에서 자신이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처럼 성도들도 자신을 본받으라고 권한다. 이 한 문장은 앞선 논의와 뒤이어 펼쳐질 예배와 성찬의 문제를 잇는 중심축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첫 원리는 규정을 더 만드는 데 있지 않고, 그리스도의 삶을 바라보는 데 있다. 사랑과 희생, 비움과 겸손, 순종으로 드러난 그 길이 공동체의 판단 기준이 된다.
그리스도를 본받는 믿음은 개인의 내면에만 머물지 않는다. 예배의 태도, 남녀가 서로를 대하는 방식, 봉사와 나눔, 공동체의 질서를 세우는 모든 자리에서 그 모양이 드러나야 한다. 자유가 자기 권리의 언어로만 남으면 다른 사람을 밀어낼 수 있지만, 그리스도를 향한 본받음 안에서는 자유가 타인을 살피는 능력으로 바뀐다. 복음의 자유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증명하는 힘이 아니라, 사랑을 위해 무엇을 내려놓을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힘이다.
성숙한 믿음은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의 경계만 계산하지 않는다. 내가 누릴 수 있는 권리가 다른 사람의 믿음을 흔들고 공동체의 평안을 깨뜨린다면, 그 권리를 행사하는 방식부터 다시 살핀다. 이는 자유를 두려워해서가 아니라 자유의 목적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자유는 자기 확장의 도구가 아니라, 사랑을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은혜의 공간이다.
장재형 목사는 바울이 단지 명령하는 지도자가 아니라, 자신이 먼저 복음적 삶의 모범이 되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가르침과 삶이 어긋날 때 공동체는 말보다 그 어긋남을 먼저 본다. 그러므로 “나를 본받으라”는 권면은 권위의 과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향해 먼저 걸어간 삶이 감당해야 할 무거운 책임이다.
복음의 평등은 서로를 지우지 않는다
11장 2절부터 16절에 등장하는 머리와 너울의 문제는 오늘의 독자에게 낯설게 다가온다. 그러나 이 설교는 그 본문을 남성의 우월이나 여성의 종속을 정당화하는 규범으로 읽지 않는다. 당시 사회에서 여성이 공적인 자리에서 너울을 쓰는 관습이 정숙함과 명예의 표지로 인식되었고, 바울은 복음의 진리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그 관습을 고려하도록 권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세상의 관습을 무조건 따르는 복종도, 자유라는 이름으로 모든 관습을 조롱하는 태도도 아니다. 교회는 세상과 단절된 섬이 아니라, 세상 한복판에서 복음을 증언하는 공동체다. 그러므로 진리를 버리지 않으면서도 불필요한 오해를 줄이고,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자신을 절제할 지혜가 필요하다. 자유와 질서가 서로를 파괴하는 적이 아니라, 사랑 안에서 함께 서야 할 두 기둥으로 제시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바울은 이어 주 안에서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않으며,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난다고 말한다. 본문의 메시지는 차이를 서열로 굳히는 데 있지 않고, 서로 없이는 온전할 수 없는 상호 의존적 평등을 드러내는 데 있다. 복음은 사람 사이의 벽을 허물지만, 그 자유가 상대를 지우는 방식으로 표현되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를 필요로 하고 존중하며 함께 자라는 관계 속에서 새로운 질서가 모습을 드러낸다.
평등은 차이를 없애는 말이 아니라, 차이를 이유로 누구의 존엄도 낮추지 않는 질서다. 상보성은 서로의 필요를 인정하고 함께 유익을 이루는 관계로 드러난다. 이 설교가 강조하는 복음적 균형은 어느 한쪽의 권리를 약화하는 데 있지 않다. 모든 관계를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존재들의 상호 존중 아래 다시 놓는 데 있다.
떡과 잔 앞에서 드러나는 공동체의 진실
11장 후반부에서 시선은 성찬으로 옮겨 간다. 고린도 교회는 함께 모였지만 하나가 되지 못했고, 공동식사 자리에서 어떤 이들은 자기 음식을 먼저 먹는 동안 가난한 이들은 배제되고 굶주렸다. 떡과 잔은 그리스도의 찢긴 몸과 흘리신 피를 기억하게 했지만, 실제 식탁에서는 희생과 나눔의 정신이 사라져 있었다. 거룩한 예전과 공동체의 현실 사이에 깊은 균열이 생긴 것이다.
문제는 성찬의 절차를 정확히 지키지 못했다는 데만 있지 않았다. 그들이 기념하던 그리스도의 희생과 그들이 실제로 대하던 형제의 삶이 서로 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풍성한 사람의 배부름 곁에 가난한 사람의 굶주림이 방치될 때, 공동체는 한 식탁에 앉아 있으면서도 주의 몸을 드러내지 못한다. 성찬은 바로 그 모순을 가리는 장막이 아니라 밝혀 내는 빛이 된다.
성찬은 단순한 종교 의식이 아니라 복음의 핵심을 눈앞에 보이게 하는 상징적 예전이다. 그리스도의 희생을 기억한다는 것은 그 사건을 마음속에 떠올리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형제를 기다리고, 약한 이를 살피며, 가진 것을 나누고, 공동체 안에서 사랑의 자리를 넓히는 삶으로 이어져야 한다. 성찬에 참여하면서도 이웃을 배제한다면, 입술로는 주의 죽으심을 기념하면서 삶으로는 그 의미를 거스르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이 대목에서 설교는 교회의 영적 상태를 성찬의 식탁 앞에 세운다. 누가 더 많이 가졌는지, 누가 먼저 도착했는지, 누가 중심에 서는지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자기 비움이 우리 사이에서 실제로 어떤 형태를 얻고 있는지가 질문된다. 떡을 나눈다는 것은 결국 삶의 자리를 나누는 일이며, 잔을 받는다는 것은 타인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고백이어야 한다.
은혜는 우리를 먼저 자신 앞에 세운다
바울은 성찬에 참여하기 전에 자신을 살피라고 권한다. 이 자기 성찰은 개인의 감정만 들여다보는 일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 불의와 불균형, 사랑의 결핍이 자라고 있지 않은지 정직하게 묻는 일이다. 교회가 세상을 향해 복음을 말하기 전에 먼저 교회 안에서 그 복음이 살아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요청이다.
자기를 살핀다는 말은 모든 책임을 개인의 양심 속에만 가두라는 뜻도 아니다. 누군가 반복해서 소외되고, 약한 이가 기다림 없이 밀려나며, 가진 자의 편의가 공동체의 기준이 되고 있다면 그 구조 역시 성찰의 대상이 된다. 성찬 앞의 성찰은 마음의 후회에 머물지 않고, 관계의 방향과 공동체의 질서를 다시 세우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장재형 목사의 설교는 이러한 성찰을 정죄를 위한 심문으로만 보지 않는다. 그것은 은혜 안에서 무너진 질서를 다시 세우고,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방치되지 않도록 공동체를 건강하게 하는 과정이다. 예배와 봉사, 재정의 사용, 이웃을 대하는 태도, 사회적 문제 앞에서의 반응까지 모두 이 질문 아래 놓인다. 우리가 지키려는 진리가 사랑과 배려의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우리가 누리는 자유가 공동체를 세우고 복음의 빛을 드러내는가.
이 설교가 말하는 질서는 통제를 위한 질서가 아니다. 그것은 은혜가 흐를 길을 열어 주고, 서로의 존엄을 지키며, 그리스도의 희생이 일상 속에서 기억되도록 돕는 사랑의 형식이다. 반대로 사랑을 잃은 질서는 생명을 억누르는 틀이 되고, 질서를 잃은 자유는 공동체에 혼란과 분쟁을 낳기 쉽다. 복음적 성숙은 이 둘을 갈라 세우는 데 있지 않고, 그리스도를 본받는 마음 안에서 하나로 묶는 데 있다.
결국 고린도전서 11장은 오래된 복장 규정이나 성찬 절차만을 설명하는 본문으로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오늘의 신앙공동체가 어떤 얼굴로 세상 앞에 설 것인지 묻는다. 우리는 자유를 말하면서 누군가를 소외시키고 있지 않은가. 예배를 드리면서도 그리스도의 희생을 관계와 나눔 속에서 지워 버리고 있지 않은가.
말씀의 마지막 여운은 공동체를 향하지만 동시에 한 사람의 내면으로 돌아온다. 내가 붙들고 있는 권리와 익숙한 방식, 내가 옳다고 여기는 태도는 과연 그리스도를 닮아 있는가. 성찬의 떡과 잔 앞에서 자신을 살피듯, 오늘 내 삶의 식탁과 말과 선택 안에도 복음이 질서 있게 흐르고 있는가. 그 질문 앞에 오래 머무는 사람에게서 비로소 자유는 사랑의 얼굴을 얻기 시작할 것이다.
장재형 박사는 현장 선교와 디지털 미디어 사역을 통해 세계 여러 지역에 복음을 전해 왔으며, 그 사역의 열매로 지상명령에 헌신하는 많은 이들이 세워졌다. 이러한 선교적 비전을 바탕으로 올리벳은 처음에 선교사 훈련을 위한 작은 교회 학교로 출발했다. 이후 보다 체계적인 신학 교육과 선교 인재 양성을 위해 2000년 로스앤젤레스와 서울에 올리벳신학대학 및 신학교가 설립되었다.
학교가 성장하면서 장 박사는 2004년 샌프란시스코에 Olivet University를 공식 설립했다. 올리벳은 샌프란시스코의 다양성과 역동적인 환경 속에서 신학을 중심으로 음악, 저널리즘, 예술디자인, 기술 분야까지 교육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또한 윌리엄 와그너 박사를 비롯한 교수진을 영입하며 교육 역량을 강화했고, 2005년에는 옛UC 버클리 다운타운 익스텐션 캠퍼스로 이전해 대학으로서의 기반을 더욱 공고히 했다.
2006년 장박사는 선교 사역에 더욱 집중하기 위해 총장직을 데이비드 제임스 랜돌프 박사에게 이양하고, 국제총장으로서 세계 선교 사역을 이끌었다. 이후 Olivet University는 2009년 기관 인증을 받았으며, 언어교육대학과 경영대학을 추가하고 학위 과정과 국제 협력 관계를 확대하면서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독교 교육기관으로 지속적으로 성장했다.
작성
2026.09.07 21:18
수정
2026.09.07 21:18
RSS피드 기사제공처 : 굿모닝매거진 / 등록기자: 최우석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해당기사의 문의는 기사제공처에게 문의
댓글 0개 (/ 페이지)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기획특집
리더경제 【국감 팩트분석】 조희대 증인 채택…대법관 제청 갈등, 국감에서 무엇을 ...
치킨 프랜차이즈 브랜드 썬더치킨이 새로운 맛의 조합을 담은 신메뉴 ‘달콤감자마요 치킨’을 ...
모델 에이전시 현장에서 쌓은 경험 바탕으로 수 컴퍼니 출범…외국인 모델·인플루언...
리더경제 【AI 시대 문화읽기】 기계는 돌아오겠다고 했다…19년 뒤 돌...
리더경제 【미중 정상회담 팩트분석】 트럼프·시진핑, 악수는 했지만…‘무역 휴전’이...
리더경제 【DMZ 폭발 사고 팩트분석】 한동훈은 왜 추석에 국방부 앞에 섰나…군은...
리더경제 【검찰개혁 팩트분석】 유시민은 왜 “국민 속였다”고 했나…이재명 대통령 ...
리더경제 【대법관 인선 팩트분석】 조희대·청와대, 서로 헌법을 말하는데…대법관 한...
리더경제 【만평·추석 민심】 민심은 어디로?…정치권 앞에 놓인 빈 장바...
리더경제 【팩트분석】 DMZ 지뢰 추정 폭발로 군 간부 2명 중상…무엇이 확인됐고...
“링구아어학원 율하 유지훈 원장” 리더경제【프리미엄 인터뷰|교육의 새로운 기준 3부】&nb...
© LEADER ECONOMY. All Rights Reserved.본 기사, 디자인 및 ...
© LEADER ECONOMY. All Rights Reserved.본 디자인 및 썸네일은...
© LEADER ECONOMY. All Rights Reserved.본 디자인 및 썸네일은...
리더경제 김해 율하에서 만나는 새로운 영어교육…“영어를 외우는 것이 아닌 영어로 생각하는 ...
리더경제 【정책 브리핑|한·미 조선협력센터(KUSPC), MASGA 전진기지 본...
리더경제 【정책 브리핑|한·미 조선협력센터(KUSPC), MASGA 전진기지 본...
리더경제 【정책 브리핑|한·미 조선협력센터(KUSPC), MASGA 전진기지 본...
리더경제 【정책 브리핑|한·미 조선협력센터(KUSPC), MASGA 전진기지 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