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인물] “글씨에도 표정이 있다”… 예당 김영희, 붓끝으로 전하는 위로와 나눔

한문서예에서 한글 캘리그래피까지, 문장의 정서를 글씨의 크기와 흐름으로 표현

어린이집 원아들의 가훈을 족자로 제작·기부… 일상에서 함께 누리는 예술 실천

[한국공공정책신문=김유리 기자]  글씨는 뜻을 전달하지만, 때로는 그 뜻을 넘어 마음의 표정까지 보여준다. 기쁜 문장은 경쾌한 움직임으로, 그리운 문장은 깊은 여운으로 다가온다. 예당 김영희에게 글씨는 오랫동안 생활이자 놀이였으며, 자신을 위로하고 이웃에게 마음을 건네는 수단이었다. 좋은 문장과 시구를 찾아 쓰는 과정에서 스스로 위로를 얻고, 그렇게 만든 작품을 주변 사람들과 나누는 데서 행복을 느낀다.

예당 김영희의 작품과 활동에는 이러한 태도가 일관되게 드러난다. 시와 노랫말을 붓으로 옮기는 작업에서부터 엽서와 책갈피, 가방과 족자를 활용한 나눔에 이르기까지, 그의 글씨는 전시를 위한 작품과 생활 속 선물 사이를 오간다. 문장을 아름답게 쓰는 즐거움을 다른 사람과 나누려는 작업이다.

 

칠판을 채우던 글씨, ‘예당’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지다


예당 김영희가 기억하는 글씨와의 첫 번째 즐거운 만남은 초등학교 시절이다. 방학숙제로 ‘금수강산’ 네 글자를 붓으로 써서 상을 받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에는 선생님을 대신해 칠판 가득 숙제를 적었고, 시험지 인쇄용 원지를 철필로 쓰거나 생활통지표의 가정통신문란을 채우기도 했다. 중·고등학교에서는 각종 일지와 도표, 표본실 명패의 글씨를 맡았다. 교직에 들어선 뒤에도 학교 게시물과 현황판을 쓰는 일은 자연스럽게 그의 몫이 됐다.

 

글씨로 맺어진 특별한 인연도 있다. 교직 첫해, 고등학교 은사의 논문 원고를 손으로 정서하는 작업을 도왔다. 퇴근 후 은사의 집을 찾아가 밤늦게까지 잉크를 찍어 한 글자씩 써 내려갔다. 훗날 은사는 그 논문집을 예당 김영희에게 건넸다. 자신이 쓴 문장을 제자의 손끝으로 완성했던 시간을, 다시 제자에게 돌려준 것이다. 이 논문집은 단순한 기록물을 넘어 자신을 믿어준 스승과의 인연을 간직한 물건으로 남아 있다.

 

한문서예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한 것은 교직에 들어선 무렵이다. 입문한 지 약 1년 뒤 회원전에서 전서로 쓴 병풍과 행서 작품을 선보였던 경험도 소중한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글씨를 쓰는 즐거움이 작품을 완성하고 다른 사람과 만나는 경험으로 이어진 시기였다.

아호 ‘예당’에도 당시의 배움과 격려가 담겨 있다. 예당 김영희에 따르면, 처음 한문서예를 배우던 때 광주 충장로에 있던 소원서예원 원장이 일찍 깨치고 재주가 있다는 뜻을 담아 지어준 이름이다. ‘예당’은 그렇게 자신의 가능성을 알아봐 준 스승의 격려와 함께 시작됐다.


문장의 뜻에 따라 달라지는 네 작품의 표정


예당 김영희는 글자의 모양을 문장의 내용과 분리하지 않는다. 즐거운 말은 웃고 춤추는 모습으로, 슬픈 말은 슬픔이 담긴 모습으로 먼저 떠오른다는 것이다. 그가 “글씨에도 표정이 있다”고 말하는 이유다. 한글의 직선과 곡선, 낱글자가 지닌 다양한 형태는 이러한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재료가 된다.

 

이러한 작업관은 〈님의 침묵〉, 〈내 나라 내 겨레〉, 〈손을 잡아요〉, 〈효〉에서 서로 다른 화면 구성으로 나타난다. 같은 붓글씨이지만 어떤 작품은 절제된 세로쓰기와 여백으로, 다른 작품은 커다란 글자와 굽이치는 배치로 문장의 정서를 드러낸다. 글을 읽는 경험에 글씨를 바라보는 즐거움을 더하는 것이다.


〈님의 침묵〉, 절제된 글씨와 여백이 전하는 그리움


한용운의 시를 옮긴 〈님의 침묵〉에서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차분하게 이어지는 세로쓰기다. 오른쪽에서 시작한 글줄은 화면 가운데와 왼쪽으로 이어지며, 한글 사이에 배치된 한자가 시각적인 변화를 만든다. 왼쪽 위의 처마와 달, 풍경을 그린 삽화와 아래쪽의 풀 그림은 글씨를 압도하지 않으면서 고요한 분위기를 보탠다.


이 작품의 장점은 감정을 과도하게 강조하지 않는 데 있다. 넓게 남겨둔 여백과 비교적 절제된 글자의 변화가 관람자로 하여금 시의 구절 사이에 잠시 머물게 한다. 글씨가 시의 뜻을 앞질러 설명하기보다, 시가 지닌 감정을 천천히 받아들이도록 돕는 구성이다.

예당 김영희는 이 작품에 부재의 슬픔과 다시 만날 것이라는 희망을 담고자 했다. 차분하게 이어지는 글줄과 고요한 여백은 그리움에 머물면서도 기다림을 놓지 않는 작품의 정서와 어울린다.


▲예당 김영희의 글씨 "만해 한용운의 님의 침묵"ⓒ한국공공정책신문


 

〈내 나라 내 겨레〉, 노래의 박동을 화면의 움직임으로 바꾸다


김민기의 노래를 소재로 한 〈내 나라 내 겨레〉는 앞선 작품과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굵고 큰 글자가 화면을 가로지르며 굽이치고, 작은 글씨로 쓴 노랫말이 그 사이에 배치돼 있다. 특히 “숨소리 점점 커져 맥박이 힘차게 뛴다”라는 구절을 크게 강조해 시선이 글자의 흐름을 따라 움직이도록 구성했다. 예당 김영희는 이를 통해 역동적인 국민의 기상을 나타내고자 했다.

 

이 작품에서는 글자의 크기와 방향이 노래의 강약을 대신한다. 굵은 획은 힘을 만들고, 곡선으로 이어지는 배치는 움직임을 만든다. 큰 글씨와 작은 글씨의 대비는 노랫말 가운데 무엇을 먼저 느끼고 읽어야 하는지를 이끈다.

내용을 읽기 전에 먼저 화면의 기세를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문장의 의미를 시각적 리듬으로 바꾸는 표현력이 돋보인다. 네 작품 가운데 글씨 자체의 조형적 존재감이 특히 강한 작업이다. 노래의 생동감을 글씨의 움직임으로 옮기려는 시도가 화면 전체에 힘을 부여한다.




〈손을 잡아요〉, 부드러운 글씨로 건네는 동행의 인사


함진원의 시를 소재로 한 〈손을 잡아요〉에서는 위로와 동행의 정서가 중심에 놓인다. 예당 김영희는 힘겨운 생활 속에서도 위로와 희망을 노래하는 시의 내용을 부드러운 글씨체로 표현하고자 했다.

작품 왼쪽에는 제목을 크게 두고, 오른쪽에는 시의 본문을 길게 이어 배치했다. 제목과 본문 사이의 여백은 화면이 지나치게 무거워지는 것을 막아준다. 글자의 크기는 문장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지만, 전체적인 인상은 강한 외침보다 다정한 권유에 가깝다. 아래쪽의 기와와 작은 꽃 그림도 이러한 분위기를 뒷받침한다.


이 작품의 미덕은 따뜻함을 장식만으로 표현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제목을 먼저 만나고, 본문을 읽은 뒤, 마지막 구절에 다시 시선이 머무는 과정에서 ‘함께하자’는 뜻이 자연스럽게 전달된다. 글씨의 부드러운 움직임과 충분한 여백이 시의 정서를 받아낼 공간을 마련한다.



〈효〉, 한글과 한시, 글과 그림을 함께 읽는 구성


〈효〉는 부모를 향한 그리움을 중심에 놓은 작품이다. 예당 김영희는 정조가 부친을 사모하는 마음을 담은 한시를 소재로 삼아, 현대어로 풀어 쓴 내용을 본문에 배치하고 한시 원문은 아래쪽 도자기 그림 안에 적어 넣었다.

길게 내려오는 화면에서는 ‘사모하여’, ‘그리운 마음’, ‘속마음’ 등 감정의 중심이 되는 말들이 크기와 굵기의 변화로 강조된다. 아래쪽 도자기 안에 크게 쓴 ‘孝’ 자는 작품의 주제를 다시 모아준다. 글과 그림, 한글과 한자가 서로 다른 역할을 맡으면서도 하나의 정서로 연결되는 구성이다.


특히 효를 추상적인 가르침으로만 제시하지 않고, 부모를 그리는 구체적인 마음으로 다가가게 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관람자는 큰 글씨로 강조된 감정을 먼저 느끼고, 이어 본문과 도자기 안의 글씨를 살피며 작품을 거듭 읽게 된다. 긴 화면을 따라 내려가는 시선이 마지막에 ‘孝’ 자에 머물면서, 그리움의 정서가 작품의 주제로 모인다.


어린이집 가훈부터 명절 족자까지, 이웃과 나누는 글씨


예당 김영희의 작품은 전시장에서 감상하는 대상으로만 머물지 않는다. 작은 엽서에 글씨를 쓰고, 가방에 색을 더하고, 책갈피를 만들어 지인들에게 선물한다. 어린이집과 유치원 등 여러 기관에는 추석 인사와 보름달·감 그림을 곁들인 족자를 전했다. 받는 이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자신에게 더 큰 행복이 돌아왔다고 회고한다.

 

어린이집 원아 60여 명의 가훈을 모아 족자로 제작하고, 전시한 뒤 기부한 활동도 있다. 각종 지역행사에서 이어온 캘리그래피 봉사활동과 함께, 글씨를 사람들과 나누는 구체적인 실천이다. 각 가정이 소중히 여기는 말을 한 장의 작품으로 완성함으로써, 글씨가 가족의 바람을 담아내는 매개가 된 것이다.

 

이러한 관심은 교육·복지 분야에서 쌓아온 경험과도 맞닿아 있다. 예당 김영희는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노인상담을 맡았으며, 문해교육과 인성·진로교육, 폭력 예방교육 등의 분야에서 활동해왔다. 사람을 만나고 생활의 어려움을 살피는 활동이 글씨를 통한 소통과 나란히 이어져 온 셈이다.

 

개인적인 취미와 봉사 중심의 활동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고자 주민센터를 찾았고, 이후 주변의 권유로 공모전에 출품하게 됐다. 홍재미술대전·경기미술대전·화성전국미술대전 등 여러 공모전에서 입선·특선·국회의원상 등을 받으며 작품활동의 폭도 넓혀왔다.

이 활동을 생활문화의 관점에서 보면, 중요한 것은 작품이 놓이는 장소의 변화다. 전시장에 걸리는 글씨가 어린이집과 가정의 벽, 누군가의 책 속으로 들어간다. 작품을 감상하는 일과 일상에서 마음을 나누는 일이 가까워지는 것이다. 예당 김영희의 나눔은 예술의 가치를 작품의 소유뿐 아니라 함께 누리는 경험에서도 찾게 한다.


문장을 아름답게 쓰는 데서, 마음을 전하는 글씨로


예당 김영희의 작품은 문장의 정서를 글자의 크기와 굵기, 배치와 여백으로 풀어내는 데 강점이 있다. 〈님의 침묵〉의 절제와 〈내 나라 내 겨레〉의 역동성, 〈손을 잡아요〉의 다정함과 〈효〉의 그리움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하나의 서체를 반복하기보다 작품의 내용에 맞는 표정을 찾으려는 태도가 읽힌다.


글씨와 그림의 관계에서도 이러한 특징이 드러난다. 처마와 달은 고요한 분위기를 만들고, 기와와 꽃은 생활의 온기를 더하며, 도자기 안의 한자는 작품의 주제를 응축한다. 삽화가 단순히 빈 공간을 채우는 장식에 그치지 않고, 문장의 정서를 보완하는 역할을 맡는 것이다.

앞으로 더 다듬을 지점도 있다. 긴 문장이 밀집한 부분에서는 글자 사이의 간격과 문장 단위의 구분을 조금 더 정돈하면 가독성을 높일 수 있다. 특히 큰 글씨로 감정을 강조하는 작품은 시선을 끄는 힘과 본문의 읽기 순서가 균형을 이루도록 조절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부분이 정교해진다면, 멀리서 보는 조형성과 가까이서 읽는 문학성을 함께 살릴 수 있을 것이다.


예당 김영희가 글씨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바람은 분명하다. 자신의 글씨가 누군가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고, 때로는 함께 울어주며, 절망한 사람에게 다시 일어설 용기를 북돋우는 것이기를 바란다. 그는 글씨가 “함께 살아가는 모두에게 작은 도움이 되는 도구”가 되었으면 한다고 전했다.

 

예당 김영희의 작품을 관통하는 것은 결국 사람을 향한 이 마음이다. 글씨를 잘 쓰는 즐거움에서 출발해, 그 글씨를 받아든 누군가의 하루를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드는 일. 그의 붓끝이 향하는 곳은 작품의 완성 너머, 함께 살아가는 이웃의 일상이다.


▲예당 김영희 ⓒ한국공공정책신문

 

▲예당 김영희의 글씨 "효"ⓒ한국공공정책신문
▲예당 김영희의 글씨 "손을 잡아요"ⓒ한국공공정책신문
▲예당 김영희의 글씨"내나라 내겨레"ⓒ한국공공정책신문



[예당 김영희 주요 약력]

-한국미술협회화성지부 화미회 회원

-전남여자고등학교 졸업

-이화여자대학교 가정관리학과 졸업

-보문고(전 광산여고), 산이 중학교  교사

-가천대학교 사회정책대학원(사회복지 전공) 졸업

-상대원1동복지회관(사회복지사) 근무

-동대문보건소(노인상담) 근무

-아나사회적협동조합 대표

-문해교육/인성,진로교육/가폭,학폭 예방강사/소비자교육강사


작성 2026.09.13 18:31 수정 2026.09.14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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