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천만상] 백마강에 서서, 미래를 묻다

— 한 사람의 참여자가 기록한 작은 시작의 이야기

▲천만상/원불교 교무 ⓒ한국공공정책신문

 [한국공공정책신문=최진실 기자] 부여의 하루는 평소와는 다른 결을 지니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풍경은 같았지만, 보이지 않는 어떤 기류가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백마강을 품은 이 땅 위에서 ‘정원’이라는 이름으로 미래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모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행사장에 들어서는 순간, 단순한 토론회 이상의 무엇이 느껴졌다. 오랜 시간 축적된 고민과 기다림, 그리고 쉽게 꺼내지 못했던 희망이 한 자리에 모여 있었다. 주최와 주관, 후원과 협력으로 이어진 여러 손길들 속에서 ‘이 일은 반드시 해내야 한다’는 무언의 결심이 전해졌다. 준비한 이들의 수고는 말없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고, 그 자체로 이미 하나의 메시지였다.


전문가들과 교수님들의 발제는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었다. 그것은 질문이었다.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 그리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묻는 깊은 물음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것은 단 하나의 문장이었다.



“백마강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 그곳에 살아가는 생명들이다.”


짧지만 무거운 이 문장은, 우리가 얼마나 오랫동안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을 대상화해 왔는지를 돌아보게 했다. 강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었다. 그것은 흐르는 생명이고, 스스로 질서를 유지하는 존재이며, 인간의 삶을 떠받치는 근원이었다. 그 강을 정원으로 만든다는 것은 단순한 조성이 아니라, 관계를 다시 설정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또 다른 발제에서는 ‘정체성’이라는 화두가 이어졌다. 부여는 이미 충분히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도시였다. 백제의 역사, 깊은 문화, 그리고 백마강이라는 자연. 그러나 그것들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지 못했을 때, 그 가치는 온전히 드러나지 못한다. ‘백제 백마강 정원’이라는 개념은 바로 그 지점을 꿰뚫고 있었다.



정원은 단순히 나무를 심고 꽃을 가꾸는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시간을 담고, 이야기를 담고, 사람들의 기억을 담는 그릇이다. 벽돌 하나, 길 하나에도 백제의 미학이 스며든다면, 그곳은 더 이상 조경 공간이 아니라 ‘살아 있는 역사’가 된다. 콘크리트로 빠르게 완성되는 공간이 아니라, 시간이 쌓이며 깊어지는 공간. 그것이 우리가 꿈꾸는 정원의 모습일 것이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거버넌스’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동안 많은 사업들이 행정 주도로 추진되었지만, 지속되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정원은 다르다. 정원은 누군가 대신 가꾸어 줄 수 없는 공간이다. 결국 사람의 손길이 닿아야 하고, 마음이 머물러야 유지된다.



시민이 참여하고, 나무를 심고, 시간을 함께 쌓아가는 과정. 그것이 곧 정원의 본질이다. 광주의 사례처럼, 시민이 주인이 되는 구조 속에서만 정원은 살아 숨 쉴 수 있다. 백마강 정원 역시 민·관·산·학이 함께하는 구조 속에서만 지속가능한 길을 찾을 수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었다.



한 교수님의 말씀이 다시 마음을 울렸다.

“정원은 공간이 아니라, 정체성을 담는 그릇이다.”

그 말은 곧, 우리가 무엇을 담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단순한 관광 자원이 아닌, 부여라는 도시의 정신과 방향성을 담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정원과 평생교육, 도시재생이 연결되는 그림은 단순한 개발을 넘어 ‘삶의 방식’을 바꾸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또 한편으로는 시간에 대한 새로운 인식도 얻었다. 정원은 단기간에 완성되는 결과물이 아니라, 수십 년을 바라보는 과정이다. 식물 하나의 선택이 생태계를 바꾸고, 시간이 흐르며 변화하고 다시 채워지는 순환의 공간. 그 속에서 우리는 조급함을 내려놓고, 긴 호흡으로 미래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을 배운다.



환경에 대한 메시지도 깊이 다가왔다. 멸종 위기 식물, 탄소중립, 재생에너지. 이제 정원은 단순히 아름다움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시대적 책임을 담아야 하는 공간이 되었다. 백마강 정원은 지역을 넘어, 미래 세대와 연결되는 약속이 되어야 한다.



행사 전 들려온 한 소식은 그날의 분위기를 더욱 뜨겁게 만들었다. 국가 차원의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는 신호. 그 순간, 막연했던 꿈이 현실로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정말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퍼져 나갔다.


행사는 끝났지만, 마음속에서는 오히려 무엇인가가 시작되고 있었다.


부여발전시민네트워크의 한 사람으로서, 나 역시 그 흐름 속에 서 있었다. 전문가도 아니고, 큰 역할을 하는 사람도 아니지만, 그날만큼은 분명히 참여자였다. 가곡 ‘선구자’를 연주했던 순간,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은 하나였다. 누군가는 시작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시작은 작아도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었다.



행사 전, 포스터를 들고 부여의 여러 게시판을 돌아다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소박하고 조용한 노력들이었지만, 그 하나하나가 오늘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번의 모임, 몇 번의 고민, 그리고 몸으로라도 함께하고자 했던 시간들. 그것들이 모여 하나의 흐름이 되었고, 지금 이 자리까지 이어졌다.



백마강 정원은 아직 시작 단계에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이미 시작되었다는 사실이다.

앞으로는 더 많은 대화가 필요할 것이다. 더 깊은 숙의와 더 넓은 참여가 필요하다. 행정과 시민이 신뢰를 쌓아가며 함께 방향을 만들어야 한다. 부여가 가진 생태와 역사, 문화가 어우러진 정원. 그것은 단순한 사업이 아니라,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남겨줄 하나의 유산이 될 것이다.


그날 우리는 첫 장을 넘겼다.

그리고 그 페이지 위에는 분명 이렇게 쓰여 있었을 것이다.

이곳에서 시작되었다.


K-컬처의 근원이 되는 이야기,

백제의 후예들이 다시 손을 맞잡고

미래를 심기 시작한 그날이다.




천만상

· 원불교 대전충남교구 

  부여문화특성화교당 주임교무

· 자살예방 전문강사 원불교 교무




작성 2026.03.27 09:00 수정 2026.03.29 18:57

RSS피드 기사제공처 : 한국공공정책신문 / 등록기자: 최진실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해당기사의 문의는 기사제공처에게 문의

댓글 0개 (/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리더경제 Shorts 더보기
️ 미국 핵심광물에 20억 달러 이상 투자…한국엔 위기일까, 기회일까? ..
KTX·SRT 하나의 앱으로 예약!코레일+#KTX #SRT #코레일플러스..
️ 폭염 속 아픈데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면? 질병관리청 AAC를 활용한 ..
8월1부터 달라진 치매 지원! 리더경제#치매정책#노인복지#지역사회돌봄#치..
보이스피싱 대응 ‘ASAP’ 가동…금융·통신·수사정보 연결해 피해 사전 ..
️ BTS·직항노선·월드컵..K-컬처가 바꾼 대한민국 관광#BTS #K컬..
징둥 JD.com️K-뷰티·K-푸드..#징둥#한류 #JD닷컴 #K#소비 ..
광복 81주년, ‘친일’의 국가 기준부터 친일재산 환수까지#광복절#안창호..
외교부 청년 50명 모집…#청년#무대#여성#평화#회의#모집#무대#환율 #..
️트럼프, 미국 ‘출산 관광’ 차단 비자·입국 심사 강화#트럼프 #미국#..
법인 고가주택 1,097채 사적 사용…최고가는 200억원 이상#리더 #경..
AI가 내 일자리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방식을 바꾸고 있습니다...
지방 투자하면 세액공제 최대 50%? 기업은 어디로 움직일까. 리더경제가..
네팔 대홍수, 359명 사망·33개국 596명 실종한국인 피해는? | 리..
경찰청 ‘범죄피해자보호과’ 신설…스토킹·성범죄 피해자 보호 강화 | 리더..
️ 중동정세 긴장 고조, 한국 원유 수급 괜찮나…호르무즈 해협이 변수 |..
리더경제 한국형 국부펀드 20조 원, 어디에 투자하나…한국경제 성장판 바..
리더경제 알뜰폰 2.0, 전파사용료 90% 감면…통신비 부담 낮출까? ..
리더경제‍️ 한국인 식생활 58.6점, 왜 낮을까?…아침·밥상·영양에서 ..
공장화재 안전혁신, AI·로봇으로 막는다…제조현장 화재 대응 어떻게 바뀌..
“살아 있다”더니 시신으로…제주 실종사건 허위 종결 또 있었다 #리더 #..
리더경제 12억 달러 돌파…오디세이는 왜 ‘진짜’를 택했나? #리더 #..
리더경제는 어떤 언론사인가
리더경제 | 제주 실종사건 ‘허위 종결’…두 실종신고는 왜 멈췄나
리더경제 | 네팔 대홍수 2부…사망 1,204명·실종 4,216명, 한국..
리더경제 | 중국 코로나19 양성률 21.2% 중국 코로나19 양성률 ..
리더경제 수도권 공공기관 350여 곳, 모두 지방으로 갈까?#리더 #경제..
한국군의 핵심 방패 ‘천궁-Ⅱ’를 우크라이나에 팔라고?#리더 #경제 #리..
리더경제 | 호르무즈 파병, 한국의 선택은? 중동 긴장이 높아지는 가..
리더경제 | 용혜인 겸직 논란 1부 ️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비례대..
리더경제 | 김육과 대동법 백성의 삶을 짓누르던 공납의 폐단, 김육은..
리더경제 | 전세금, 집주인 아닌 HUG가 관리한다? 임대인·임차인·..
리더경제 | 워터밤, 여름 축제가 돈이 되는 순간 공연과 물놀이가 결..
리더경제 “탈퇴했는데도 내 정보가?”️ 3,954만 명이 아닌 ‘중복 포..
리더경제 링구아어학원 율하 유지훈 원장|“실력의 격차는 언어에서 시작됩..
리더경제 코로나 입원환자 증가, 다시 유행할까요? 기사 바로 보기 h..
리더경제이창동 감독 수상, 세계가 다시 주목한 이유는https://www..
리더경제 ️ 여수세계섬박람회,끝나면 무엇이 남을까?기사https://ww..
리더경제 ️ 자경단 총책 무기징역 기사https://www.leader-..
리더경제 내년이면 AI 통제 불능?https://www.leader-e..
리더경제 뉴스 더보기

리더경제 7월 수출은 63% 급증했지만 대기업 비중은 75.2%https://www.leader-econom...

리더경제뉴홈 모기지 1.9~3.0% 확정…40년 총이자는?https://www.leader-economy.k...

리더경제 AI가 복지·세금을 잘못 안내하면?https://www.leader-economy.kr/news/4...

리더경제 ‘역사 왜곡’ 대 ‘공작 DNA’https://www.leader-economy.kr/news/47...

리더경제 한국산 드론도 최대 15% 관세…미국 생산 압박 본격화https://www.leader-econo...

리더경제 세계 인구 99%가 기준 밖 공기에 노출 https://www.leader-economy.kr/n...

리더경제 코로나 연체 6조3천억, 전부 탕감?https://www.leader-economy.kr/news/...

리더경제 터미네이터보다 먼저 돌아온 디워https://www.leader-economy.kr/news/470...

리더경제️ 조희대 증인 채택…국감에서 확인할 두 가지 기록https://www.leader-economy.k...

리더경제반도체 문도 열렸을까?https://www.leader-economy.kr/news/470474#리더...

리더경제️DMZ 현장조사https://www.leader-economy.kr/news/470473#리더#경제...

리더경제️ 유시민 “국민을 속였다”…검찰개혁 쟁점은https://www.leader-economy.kr/ne...

리더경제️ 대법관 한 자리https://www.leader-economy.kr/news/470437#리더#경...

리더경제 정치권 앞 빈 장바구니…추석 민심은?https://www.leader-economy.kr/news/...

리더경제️ PF센터 접수하면 47조8천억 지원?https://www.leader-economy.kr/news...

리더경제 애플 첫 폴더블폰, 주가는 왜 하락?https://www.leader-economy.kr/news/...

리더경제 경기도 재정, 위기인가 경고인가https://www.leader-economy.kr/news/465...

리더경제 삼성바이오 3,508억 원 수주https://www.leader-economy.kr/news/466...

리더경제 주식 거래, 오후 8시까지https://www.leader-economy.kr/news/466970...

리더경제 반도체 수출 역대 최대https://www.leader-economy.kr/news/466639#리...

리더경제️ DMZ 지뢰 추정 폭발…군 간부 2명 중상https://www.leader-economy.kr/n...

리더경제 추석 연휴 첫날 국내 핵심 5https://www.leader-economy.kr/news/4702...

리더경제 미중 정상회담 앞둔 국제뉴스 핵심 5https://www.leader-economy.kr/news/...

리더경제 57명·5억8000여만원, 부정수급 혐의https://www.leader-economy.kr/new...

리더경제 건강하고 넉넉한 한가위https://www.leader-economy.kr/news/470182#리...

리더경제 지지율 37%, 올해 추석상은 얼마일까요?https://www.leader-economy.kr/ne...

리더경제협력 116건, 실제 계약은?https://www.leader-economy.kr/news/46857...

리더경제 대미투자 1호, 아직 미확정https://www.leader-economy.kr/news/46549...

리더경제 봉쇄 95일 만에 제한적 진입https://www.leader-economy.kr/news/4654...

리더경제 김현지, 왜 인사 논란마다 소환되나https://www.leader-economy.kr/news/4...

리더경제강훈식 뇌구조 https://www.leader-economy.kr/news/469588#리더#경제 ...

리더경제한국,첫날 금 4·은 3·동 7개 https://www.leader-economy.kr/news/46...

리더경제 장인 업체 계약, 최저가면 충분했나https://www.leader-economy.kr/news/...

리더경제오늘의 뉴스 톱10https://www.leader-economy.kr/news/469277#리더#경...

리더경제오세훈의 뇌구조https://www.leader-economy.kr/news/469406#리더#경제#...

리더경제 국산 비만약 ‘에페’ 연내 출시 추진https://www.leader-economy.kr/news/...

리더경제 강남언니 약 22만 명 정보 유출https://www.leader-economy.kr/news/4...

리더경제 오늘의 뉴스 탑텐https://www.leader-economy.kr/news/468927#리더#...

리더경제⏱️ 추미애의 개혁 시계, 왜 더 빠를까https://www.leader-economy.kr/news...

리더경제 사퇴 뒤 남은 세 버튼https://www.leader-economy.kr/news/468917#리...

리더경제 김민석의 머릿속은?https://www.leader-economy.kr/news/468862#리더#...

리더경제️ 한동훈 “국민의 승리”끝나지 않은 공방https://www.leader-economy.kr/new...

리더경제 대통령의 다음 한 수는?https://www.leader-economy.kr/news/468794#...

리더경제 ‘세 낀 집’ 입주, 최대 3년 3개월 미룬다https://www.leader-economy.kr/...

리더경제️ 김승원 후보자,자진 사퇴https://www.leader-economy.kr/news/468800...

리더경제 상품권 거래 0건, 934억 원은 어디로https://www.leader-economy.kr/new...

리더경제 미프진, 한국인 임상 없이 도입?https://www.leader-economy.kr/news/46...

리더경제끼임 사고 막을 수 있나?https://www.leader-economy.kr/news/467391#...

리더경제️ 서울 아파트값 최장 상승, 언제까지?https://www.leader-economy.kr/news...

리더경제 | “모두 저의 부족함”…이 대통령, 더 낮은 자세 약속https://www.leader-eco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