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의 목소리] 선거 너머의 아이들, ‘청소년 자살예방 공약’이 선언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글 : 김근해 (월포초등학교 교육복지사 )

 

매일 아침 학교 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이들의 얼굴을 마주한다. 어떤 아이는 활기차게 인사를 건네지만, 어떤 아이는 깊게 늘어진 그림자를 숨긴 채 고개를 숙인다. 학교 안에서 취약계층 학생과 위기 학생을 발굴하고 밀착 관리하는 교육복지사의 눈에, 요즘 아이들이 온몸으로 보내는 소리 없는 구조신호(SOS)는 날이 갈수록 위태롭고 절박하다.

김근해 (월포초등학교 교육복지사)

최근 발표된 통계와 교육계 자료는 이 연약한 징후들이 단순한 기우가 아님을 증명한다. 위기 청소년 5명 중 1명 이상이 최근 1년 사이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는 조사 결과가 있고, 교육청의 정기 정서·행동 특성검사만으로는 교실 구석에 숨은 사각지대의 고통을 완전히 선별해 내기 어려운 것이 엄연한 현장의 한계다.

 

지방선거 과정에서 경남교육감 후보들이 약속한 ‘학생 안전 및 정신건강 관리 시스템 구축’, ‘위기 학생 조기 발견 체계 강화’와 같은 공약들을 현장의 교육복지사로서 깊이 환영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아이들의 ‘마음 건강’을 교육의 핵심 책임으로 골자로 삼은 후보들의 안심 공약은, 벼랑 끝에 선 아이들에게 사회가 먼저 손을 내밀겠다는 소중한 약속이다.

 

그러나 진짜 시험대는 선거가 끝난 바로 지금부터다. 수많은 선거를 지켜보며 우리가 목격했던 것은 표심을 잡기 위한 화려한 공약들이 당선 이후 예산과 인력의 현실적 한계, 혹은 행정적 우선순위에 밀려 서서히 퇴색되던 씁쓸한 과정들이었다. 학교 자살 예방 정책이 교육·예방·선별·연계·관리라는 전 단계에서 실효성 있게 작동하려면, 교육감 임기 내내 흔들림 없는 예산 확보와 제도적 뒷받침이 지속되어야만 한다.

특히, 교육청과 학교라는 제도권 기관의 노력만으로는 고도화되고 복잡해진 청소년들의 정서적 위기를 완전히 해소할 수 없다. 공약의 실천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보완과 더불어, 이미 지역 사회 최일선에서 아이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발로 뛰고 있는 민간 영역의 헌신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지난 2005년 설립되어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경남 지역사회에서 오직 아이들을 위해 묵묵히 자살예방 활동과 생명존중 문화를 이어온 순수 NGO 단체, ‘경남자살예방협회’의 수많은 활동가가 바로 그 중심에 있다. 행정의 손길이 채 닿지 못하는 지역사회의 실핏줄 같은 사각지대마다 이들 민간 활동가들의 땀방울이 서려 있다.

 

현장에서는 민간의 전문 상담 시스템과 위기 개입 노하우가 결합했을 때 극단적 선택의 위험률을 현저히 낮출 수 있다는 사실이 여러 차례 입증된 바 있다. 학교 현장의 교육복지 인력과 지역 민간 NGO의 촘촘한 네트워크가 어우러져 작동할 때, 비로소 위기 학생의 조기 발견부터 사후 즉각적인 상담 및 정서적 치유 단계에 이르기까지 빈틈없는 통합 안전망이 완성된다.

 

새롭게 경남 교육을 이끌어갈 당선인과 교육 당국에 간곡히 당부한다. 선거 기간 아이들을 위해 내걸었던 자살예방 공약들을 철저히 이행함과 동시에, 오랜 시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생명 구호의 사명을 다해온 경남자살예방협회 활동가들에게 아낌없는 격려와 따뜻한 관심을 보내주시라. 아울러 이 순수 민간 NGO와의 청소년 자살예방 협업 활동이 지금보다 훨씬 더 넓고 깊은 범위로 확장·전개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기를 기대한다.

 

어른들의 정치적 수사나 행정 편의주의적 진단 속에 아이들의 생명이 담보 잡혀서는 안 된다. 선거가 끝나도 우리 아이들의 고통은 멈추지 않으며, 아이들을 살리기 위한 민간 활동가들의 걸음 또한 멈추지 않는다. 이제는 공약을 넘어, 단 한 명의 아이도 외롭게 스스로를 놓아버리지 않도록 경남 교육이 현장의 헌신적인 손길들과 함께 가장 따뜻하고 튼튼한 방패가 되어주어야 할 때다.

 

작성 2026.06.02 12:42 수정 2026.06.02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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