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소기업연합뉴스] 윤병운 칼럼니스트 = 상장폐지 결정을 통보받은 회사가 가장 먼저 검토하는 것은 대체로 효력정지 가처분이다. 그리고 그 가처분이 기각되면 상당수가 그 시점에서 대응을 정리한다. 본안까지 끌고 가더라도 결론이 달라지지 않으리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 판단이 최근까지 크게 틀린 것은 아니었다. 다만 2026년에 그 전제를 흔드는 판결이 하나 나왔다. 논의의 출발점부터 정리한다. 상장폐지는 행정처분이 아니다. 거래소는 법률에 따라 설립된 주식회사이고, 상장계약은 사법상 계약이며, 상장폐지는 그 계약관계를 해소하려는 거래소의 일방적 의사표시라는 것이 대법원의 입장이다(대법원 2007. 11. 15. 선고 2007다1753 판결).
따라서 다툴 수 있는 수단은 처음부터 상장폐지결정 효력정지 가처분과 상장폐지결정 무효확인의 소 둘로 한정된다. 문제는 이 둘이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는 점이다. 가처분은 소명으로, 본안은 증명으로 판단하며 심리의 밀도가 같지 않다.
│ 가처분의 인용률은 3.57%에 머문다
2022년부터 2025년 2월까지 47개사가 상장폐지결정 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했고, 그중 28개사가 판단을 받았으며, 인용은 1건이었다(더벨 2025. 2. 18.). 기각은 2022년 14사, 2023년 6사, 2024년 7사다.
2021년부터 2025년까지 85건 중 2건으로 집계한 조사도 있다. 모집단이 다르므로 인용할 때는 기간과 분모를 함께 밝히는 편이 안전하나, 어느 쪽이든 결론은 같다. 가처분 인용은 사실상 기대하기 어렵다.

▲ 가처분은 신청 47개사 가운데 1건만 인용됐다
그 예외가 비덴트 사건이다. 서울남부지방법원은 2025년 2월 3일, 거래소가 2024년 9월 30일에 한 상장폐지결정의 효력을 본안판결 확정 시까지 정지하고 정리매매절차의 진행을 금지했다. 인용 사유는 재량권의 일탈·남용이었다. 상장폐지 사유를 해소할 가능성이 있었음에도 거래소가 이를 고려하지 않고 절차를 강행했다는 것이다.
주목할 대목은 그 이후다. 거래소는 결정일로부터 2주 뒤인 2025년 2월 17일, 본안 판단을 기다리지 않고 상장폐지 의결을 스스로 취소했다. 가처분이 인용될 경우 그 효용은 시간 확보에 그치지 않고 절차 자체를 원점으로 되돌리는 데까지 미친다. 다만 그 확률이 3.57%라는 사실은 함께 놓고 보아야 한다.
가처분에서 기각됐다는 사실은 본안의 결론을 예고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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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안은 넓은 문이 아니지만, 가처분과 같은 문도 아니다
원칙부터 확인한다. 본안까지 진행하더라도 회사가 이기는 경우는 많지 않다. 씨앤케이인터내셔널은 1심(서울남부지방법원 2015. 12. 18. 선고 2015가합104238 판결)과 2심(서울고등법원 2016. 7. 15. 선고 2016나2002473 판결)을 거쳐 대법원 2019. 12. 12. 선고 2016다243405 판결로 패소가 확정됐다. 본안은 시간이 오래 걸릴 뿐 문이 넓지 않다. 그 원칙에 예외가 하나 생겼다. 제일바이오다.

▲ 제일바이오 사건 경과
같은 법원에서 같은 상장폐지결정을 두고 가처분은 기각되고 본안은 인용됐다. 거래소가 가처분에서 이기고 본안에서 패소한 첫 사례다.
결론을 가른 것은 법리가 아니었다. 법원은 자산 329억원 중 현금·예금이 약 161억원으로 유동성 위험이 낮다고 보았고, 감사의견을 거절했다는 사정만으로 재무상태의 건전성을 상실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여기에 더해 횡령·배임 고소 5건이 2023년 12월부터 2026년 2월까지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실질심사 사유의 사실적 기초가 소멸한 것이다. 그리고 그 소멸은 무혐의 처분이 2026년 2월까지 이어진 탓에 가처분 심리 시점에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였다. 두 절차의 결론이 갈린 실질적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만 거래소가 항소하여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 무엇을 다툴 것인가 — 세개의 공격 지점
가처분이든 본안이든 공격할 수 있는 지점은 셋이고, 실무에서는 첫 번째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첫째는 사유의 부존재다. 가장 흔한 주장이지만 형식적 상장폐지 트랙에서는 관철되기가 가장 어렵다. 둘째는 조항 자체의 무효다. 회사정리절차 신청만을 이유로 한 상장폐지 조항에 대해, 비례성과 형평성에 반하고 회사정리법이 보장한 권리를 지나치게 제약하여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해 공정을 잃은 조항이므로 무효라고 본 판결이 있다(서울고등법원 2006. 12. 14. 선고 2006나18022 판결).
이 판결은 앞서 본 대법원 2007다1753 판결로 상고가 기각되어 확정됐다. 상장폐지의 법적 성격을 규정한 판시와 조항 무효 판단이 같은 사건에서 나온 것이다. 셋째는 재량 행사의 하자다. 자본시장법 제390조에 따른 상장규정은 약관에 해당한다(서울남부지방법원 2011. 3. 8.자 2011카합113 결정).
같은 결정은 신주발행의 효력에 관한 소송이 제기되기만 하면 상장을 유예할 수 있도록 한 조항에 대해, 재량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거래소가 예외 없이 유예해 온 이상 재량권을 행사할 여지가 사실상 거의 없다는 이유로 약관규제법 제6조 제1항 및 제2항 제1호 위반의 무효를 인정하고, 2011년 2월 25일자 상장유예결정의 효력을 정지했다.
다만 일부인용이었다. 효력정지는 받아들여졌으나 상장절차를 이행하라는 청구는 기각됐다. 막는 것과 시키는 것은 다른 문제다.
비덴트와 제일바이오는 모두 셋째 지점에서 결론이 났다. 첫째가 아니다.
│ 실무상의 함의
두 절차의 차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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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처분
| 본안 |
인용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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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7%(2022~2025. 2.) |
표본이 충분하지 않다 |
인용 시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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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력정지 및 정리매매 금지 — 절차의 원점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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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효 확인 |
소요 기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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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덴트 약 4개월 |
제일바이오 약 10개월 |
기각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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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안 결론을 예고하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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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무적 결론은 가처분과 본안은 동시에 설계하되 증거는 본안을 기준으로 축적해야 한다. 형사 처분 결과와 같이 시간이 지나야 완성되는 자료는 가처분에는 늦더라도 본안에는 늦지 않는다.
│ 남는 문제
이 구조에는 비대칭이 있다. 회사가 이기려면 거래소가 재량을 잘못 행사했다는 점을 밝혀야 한다. 그런데 그 다툼을 이끄는 경영진은 같은 기간에 자기 형사사건의 피고인이기도 하다. 제일바이오에서 상장을 되찾은 결정적 요소가 무혐의 처분이었다는 사실은, 뒤집어 보면 형사에서 지면 상장도 함께 잃는다는 의미가 된다. 반대편에는 씨앤케이가 있다. 형사에서 일부 다투어 냈음에도 상장은 지키지 못했다.
회사를 살리려는 행동이 경영진을 위태롭게 하고, 형사에서 이기더라도 상장은 지키지 못하는 구간. 이 연재가 거듭 돌아올 지점이다.
다음 회에서는 왜 지금 이 논의가 필요한지, 2026년에 상장폐지 요건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살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