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성장률 2.6%로 둔화…AI·첨단산업이 가르는 국가 경쟁력

UNCTAD “개도국 성장률 4%로 하락”…교역은 늘어도 부가가치는 선진국에 집중

AI·반도체·에너지 전략산업 투자 격차 확대…원자재 공급국 탈피가 성장의 관건

세계 경제가 성장 둔화와 지정학적 불확실성이라는 이중 압력에 직면했다. 글로벌 교역 규모는 확대되고 있지만, 인공지능(AI)과 반도체, 에너지 전환 등 고부가가치 산업에서 창출되는 이익은 일부 국가와 기업에 집중되고 있다. 개발도상국들이 세계 경제의 성장에 기여하면서도 산업 고도화의 성과를 충분히 누리지 못하는 구조적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9일 발표한 ‘2026 무역·개발 보고서’에서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을 2.6%로 전망했다. 지난해 성장률 2.9%보다 0.3%포인트 낮은 수준이다. 개발도상국의 성장률 전망치도 지난해 4.7%에서 올해 4.0%로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세계 상품·서비스 교역은 실질 기준으로 약 4%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교역이 확대되는 상황에서도 경제성장 속도가 둔화하는 것은 세계 경제가 단순한 교역량의 증가만으로는 충분한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국면에 들어섰음을 보여준다.

 

■ 교역은 늘지만 성장의 과실은 고르게 분배되지 않는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 따르면 세계 교역액은 2025년 사상 최대인 35조 달러를 기록했다. 그러나 올해 교역액 증가에는 에너지 가격 상승 등 가격 요인의 영향이 작용하고 있다. 교역액이 늘었다고 해서 생산량과 기업의 실질적인 수익성이 같은 폭으로 개선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특히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위기는 에너지 가격을 끌어올리며 세계 경제의 부담을 키우고 있다. UNCTAD는 분쟁 발생 이후 브렌트유 가격이 배럴당 70달러에서 110달러를 웃도는 수준까지 상승했다고 분석했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개발도상국과 저소득 가계일수록 충격이 크게 나타날 수 있다. 고금리와 차입 비용 상승, 자본 이동의 변동성까지 겹치면 투자 여력이 부족한 국가들은 산업시설 확충과 기술 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기 더욱 어려워진다. 세계 경제의 성장 둔화가 모든 국가에 동일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재정과 산업 기반이 취약한 국가에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하는 구조다.

 

AI 시대, 기술을 보유한 국가가 부가가치를 가져간다

이번 보고서에서 주목할 대목은 AI 산업의 성장과 그 성과가 배분되는 방식이다. AI는 세계 교역을 견인하는 핵심 동력으로 부상했다. 반도체와 첨단 컴퓨팅 장비, AI 데이터센터 관련 제품에 대한 수요가 확대되면서 관련 산업의 투자와 생산이 늘고 있다. 그러나 기술과 자본, 핵심 지식재산을 확보한 기업과 국가가 산업의 부가가치를 더 많이 가져가는 현상도 뚜렷해지고 있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제시한 첨단 AI 서버 랙의 가치사슬 분석 사례에서는 추적된 부가가치 가운데 세후 이익이 68%를 차지한 반면,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몫은 15% 미만이었다. AI 관련 교역이 확대되더라도 그 성과가 노동자와 생산 현장, 관련 국가에 폭넓게 분배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투자에서도 격차는 분명하다. 

2020~2025년 발표된 반도체, 에너지 전환 기술, AI 인프라 등 고부가가치 전략산업의 그린필드 투자에서 선진국이 차지한 비중은 약 70%에 달했다. 개발도상국은 핵심 광물과 전략 소재 분야에서 상대적으로 강점을 보였지만, 원자재 생산에서 첨단 소재 가공과 최종 제품 제조로 이어지는 산업 사슬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아프리카가 세계 코발트 생산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면서도 친환경 산업 가치사슬에서 확보하는 가치가 1% 미만이라는 UNCTAD의 분석은 이러한 문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자원은 개발도상국에서 생산되지만, 이를 가공하고 첨단 제품으로 전환해 높은 이익을 창출하는 단계는 다른 국가와 기업이 주도하는 구조다. 원자재 수출에 의존하는 산업구조를 유지하는 한, 교역이 증가해도 선진국과의 소득 격차를 줄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아시아는 세계 성장의 엔진…국가별 산업전략이 성패 가른다

지역별로는 아시아가 상대적으로 강한 성장세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됐다. UNCTAD는 아시아가 2026년 세계 경제성장 기여분의 59%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인도는 7.3%, 중국은 4.5%, 인도네시아는 5.2%의 성장률이 전망됐다. 베트남도 7.8%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아시아의 성장세가 모든 국가의 산업 고도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동아시아는 반도체와 첨단 컴퓨팅 제조업을 중심으로 세계 교역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다른 개발도상국들이 과거 아시아의 산업화 경로를 그대로 따라가기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수출통제와 투자심사, 공급망 규정 등 경제안보를 위한 정책이 강화되면서 전략산업 시장에 새롭게 진입하는 데 필요한 기술과 자본, 제도적 조건도 까다로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각국은 산업·통상·금융·기술 정책을 따로 추진하기보다 하나의 전략으로 연결해야 한다.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지 기업의 참여를 확대하며, 기술 이전과 인력 양성, 국내 부가가치 창출로 연결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 UNCTAD의 핵심 제언이다.

 

한국, 수출 실적 넘어 산업 생태계 경쟁력 높여야

이러한 세계 경제의 변화는 수출 제조업과 첨단기술 산업의 비중이 높은 한국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반도체와 AI, 에너지, 첨단소재 등 전략산업의 기술 경쟁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핵심 기술이 실제 생산과 수익 창출로 이어지는 산업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대기업의 투자 확대만으로는 중소·중견기업의 성장과 지역 산업의 경쟁력 강화까지 보장하기 어렵다. 특히 AI 산업에서는 기술 개발과 도입 자체보다 실제 산업 현장에서 생산성을 높이고 새로운 사업모델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중요해지고 있다. 첨단소재 역시 원료 공급에 머무르지 않고 정밀가공과 부품·장비 제조, 시스템 통합으로 이어지는 가치사슬을 확보해야 산업적 파급효과를 높일 수 있다. 지역 산업정책도 같은 관점에서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기업이나 생산시설을 유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의 기존 제조업과 연구개발 역량을 AI·로봇·첨단소재 등 미래 산업과 연결해 지속적인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 에너지 정책 역시 경제안보와 산업경쟁력의 핵심 변수다. UNCTAD는 재생에너지 확대와 에너지 공급원 다변화를 통해 수입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출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2024년 이후 신규 설치 기준으로 재생에너지가 가장 저렴한 신규 화석연료 발전 대안보다 경제적인 경우가 90%를 넘었다고 분석했다.

 

성장률보다 중요한 것은 ‘누가 가치를 가져가는가’

이번 UNCTAD 보고서가 던지는 질문은 단순히 세계 경제가 얼마나 성장하느냐에 그치지 않는다. 성장 과정에서 창출되는 부가가치를 누가 확보하고, 그 성과를 자국의 산업과 고용, 기술 축적으로 연결하느냐가 더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개발도상국이 원자재 공급과 저부가가치 생산에 머무는 동안 선진국이 AI와 반도체, 첨단에너지 등 전략산업의 핵심 기술과 투자 수익을 장악한다면 세계 교역의 확대는 국가 간 격차를 줄이기보다 오히려 고착화할 수 있다. UNCTAD는 산업·금융·기술 정책의 연계, 무역 상대국 다변화, 국내 부가가치 확대, 지역 간 경제협력을 주요 대응 방향으로 제시했다. 개발도상국이 전략산업의 일부 분야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역내 협력을 통해 시장과 공급망을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세계 경제가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수록 경쟁의 기준도 달라진다. 얼마나 많이 생산하고 수출하느냐를 넘어, 핵심 기술을 확보하고 산업의 가치사슬을 주도하며 성장의 과실을 국내에 축적할 수 있느냐가 국가 경쟁력을 결정하는 핵심 변수가 되고 있다. 세계 성장률 2.6% 시대의 본질은 성장의 둔화만이 아니다. 산업을 보유한 국가와 산업의 가치를 지배하는 국가 사이의 격차가 더욱 커질 수 있다는 데 있다.

작성 2026.10.10 10:00 수정 2026.10.1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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