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셀 브랜드 성범죄 유죄…스타의 일탈 용인한 영국 연예계 돌아보다

런던 법원, 3주 재판 끝에 강간 1건·성추행 3건 유죄 평결

성적 일탈 내세운 공연·회고록, 방송 출연과 대중적 성공으로 이어져

피해 신고인과 업계 관계자들, 스타 중심 위계와 침묵의 문화 지적

[화담일보=임채원기자] 영국 코미디언 러셀 브랜드가 강간과 성추행 사건에서 유죄 평결을 받으면서, 그의 성공을 뒷받침했던 2000년대 영국 연예계 문화도 다시 조명되고 있다. BBC는 6일 브랜드가 목요일 런던 서더크 형사법원에서 3주간의 재판 끝에 강간 1건과 성추행 3건에 대해 유죄 평결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브랜드는 도발적인 스탠드업 코미디언에서 방송 진행자와 할리우드 배우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이후 유튜버와 정치 활동가로 변신했고, 2010년대에는 불평등 문제와 관련한 좌파 의제를 지지했다. 이후 코로나19 음모론을 다뤘으며 2024년에는 도널드 트럼프를 대통령 후보로 지지했다. 같은 해 런던 템스강에서 기독교 세례를 받기도 했다.

 

그의 초기 명성을 만든 핵심 소재는 성과 약물, 과도한 생활 방식이었다. 성적 일탈을 거리낌 없이 이야기하는 인물을 내세웠고, 공연에서는 자신의 성 경험을 노골적인 농담으로 풀어냈다. 범행이 이어진 10년 동안 공연장과 극장을 매진시켰고 MTV와 채널4, BBC 등 방송사도 그를 기용했다. 재판에서 변호인은 당시 이런 코미디가 급진적이고 색다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며 ‘시대의 산물’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인기를 이해하는 배경에는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 영국 대중문화가 있다. 일상적인 성차별을 농담으로 소비하고, 이를 드러내는 유명인을 띄워주던 분위기다. 1999년 잡지 FHM은 스코틀랜드 출신 방송인 게일 포터의 나체 사진을 영국 의사당 외벽에 투사했다. 포터는 뉴스를 보고서야 이를 알았으며, 이후 이 일이 자신의 정신건강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톡식: 여성, 명성 그리고 2000년대』의 저자 세라 디텀은 당시 금기를 깨는 표현에 대한 수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브랜드의 공연이 풍자적 연기가 아니라 실제 행동을 반영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지금은 이를 옹호하려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브랜드가 2007년 출간한 회고록 ‘마이 부키 우크’도 당시의 반응을 보여준다. 책은 성 중독 치료시설에 들어가는 이야기로 시작해 자신의 성생활과 유명세로 달라진 경험을 서술했다. MTV 홍보 담당자의 사전 동의 없이 그 담당자의 카드로 성매매 등의 비용을 결제하고, 호텔에서 해당 계정으로 현금을 받았다는 내용도 담겼다. 영국에서 양장본 60만 부가 팔렸고, 2007년 선데이타임스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7주간 정상을 차지했다. 당시 서평에는 솔직하고 재미있는 유명인 자서전이라는 호평이 실렸다.

 

BBC는 브랜드의 성관계 상대 가운데 상당수가 관계에 동의했다고 전했다. 브랜드 측 변호인은 재판에서 그가 오랫동안 많은 상대와 성관계를 맺는 생활을 했다며, 성관계를 많이 갖는 것 자체는 합법이라고 강조했다.

 

디텀은 대중이 아이러니와 자기 인식을 진실성이나 신뢰성으로 오인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성적으로 문제 있는 인물처럼 스스로를 묘사한 농담이 오히려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주려 했다는 설명이다.

 

재판에서는 당시 분위기가 피해 신고를 어렵게 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한 피해 신고인은 남성 중심의 문화 속에서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 신고하지 않았다고 법정에서 밝혔다. 그는 “그의 말에 맞서는 것은 내 말뿐이었다”고 증언했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방송사 간부는 유능하고 매력적인 스타를 잃고 싶지 않다는 업계의 판단 때문에 피해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문제를 제기한 소수도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으로 분류됐을 수 있으며,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브랜드와 비슷한 시기에 공연한 코미디언 조 콜필드도 스타를 둘러싼 제작진과 기획자 등의 위계를 지적했다. 그는 처음에는 브랜드가 매우 매력적이라고 느꼈지만, 주변이 그의 행동을 가능하게 했고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신입 제작 보조원이 분장실에서 스타의 성기 노출을 겪더라도 소란을 피우지 말라는 반응을 듣게 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콜필드는 “아무도 스타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며 수익을 내는 스타가 잘못 행동해도 위계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침묵을 요구받는다고 말했다. 연예계 일부에서 보호 기준이 크게 강화됐지만 이런 문제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작성 2026.11.09 07:50 수정 2026.11.09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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