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이후 최고치 찍은 글로벌 무기 거래…K-방산, 유럽 재무장의 핵심 공급망으로

유럽 무기 수입 210% 급증…세계 무기 수입의 33% 차지

미국 점유율 42%로 확대, 러시아 수출은 64% 급감…한국은 유럽 NATO 무기 수입국의 8.6% 공급

글로벌 방산시장이 냉전 종식 이후 최대 수준의 무기 거래를 기록하며 구조적 전환기에 들어섰다. 유럽의 재무장 확대와 미국의 수출시장 지배력 강화, 러시아의 수출 위축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세계 방산시장의 경쟁 구도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한국 방산기업에는 수출 확대의 기회가 열리고 있지만, 단순한 무기 판매를 넘어 현지 생산과 기술협력, 장기 군수지원까지 아우르는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과제도 커지고 있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2026년 3월 발표한 국제 무기 이전 동향에 따르면, 2021~2025년 세계 주요 무기 이전 규모는 직전 5년인 2016~2020년보다 9.2% 증가했다. 이는 2011~2015년 이후 가장 큰 증가 폭이다. 주요 무기 거래량이 냉전 종식 이후 최고 수준으로 올라섰다는 점에서 글로벌 방산시장의 성장세가 일시적인 현상을 넘어 중장기적인 수요 변화와 연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군사비 지출 역시 증가세를 이어갔다. SIPRI가 2026년 4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5년 세계 군사비는 2조8,870억 달러로 전년보다 실질 기준 2.9% 증가했다. 이는 11년 연속 증가한 것으로, 세계 국내총생산(GDP) 대비 군사비 비중도 2.5%에 달했다. 다만 증가율은 2024년의 9.7%보다 낮아졌다. 군사비 지출 확대가 곧바로 같은 비율의 무기 수출 증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각국의 국방력 강화가 무기 획득과 방산 생산능력 확충을 뒷받침하는 주요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유럽, 세계 최대 무기 수입시장으로 부상

이번 통계에서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유럽이다. 2021~2025년 유럽의 주요 무기 수입 규모는 직전 5년보다 210% 증가했다. 세계 전체 무기 수입에서 유럽이 차지하는 비중도 33%로 높아졌다. 유럽이 세계 최대 무기 수입 지역에 오른 것은 1960년대 이후 처음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 각국은 전차와 자주포, 방공체계, 전투기, 미사일 등 핵심 무기체계의 확보를 서두르고 있다. 기존에 보유한 장비의 교체뿐 아니라 탄약 비축, 군수지원 기반 확충, 방위산업 생산능력 확대도 주요 정책 과제로 부상했다. 안보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긴급 조달이 중장기적인 군 현대화 사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해당 기간 세계 주요 무기 수입의 9.7%를 차지하며 최대 수입국에 올랐다. 폴란드와 영국도 유럽의 주요 무기 수입국으로 부상했다. 특히 폴란드는 동부 유럽의 안보 환경 변화에 대응해 대규모 무기 도입을 추진하면서 국제 방산기업들의 핵심 시장으로 자리 잡았다. 유럽의 무기 수입 증가는 단순히 특정 국가의 전쟁 수요에 국한되지 않는다. 러시아에 대한 위협 인식과 미국의 유럽 안보 공약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맞물리면서 유럽 국가들이 독자적인 방위 역량을 강화하려는 움직임도 확대되고 있다. 이에 따라 무기 도입과 생산시설 투자, 현지 산업기반 구축을 결합하는 방식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미국의 지배력 강화와 러시아의 수출 위축

수출시장에서는 미국의 우위가 더욱 뚜렷해졌다. 미국의 주요 무기 수출 규모는 2016~2020년 대비 27% 증가했으며, 세계시장 점유율은 36%에서 42%로 확대됐다. 미국은 2021~2025년 전 세계 99개 국가에 주요 무기를 공급했고, 유럽은 처음으로 20년 만에 미국 무기 수출의 최대 지역이 됐다. 미국의 경쟁력은 개별 무기체계의 성능에만 있지 않다. 전투기와 장거리 방공체계 등 첨단 무기 공급에 더해 동맹국과의 군사협력, 운용체계 간 연동성, 정비·부품 공급, 후속 군수지원까지 포괄하는 체계가 시장 지배력을 뒷받침하고 있다. 구매국 입장에서도 무기 자체의 가격과 성능뿐 아니라 수십 년간 운용할 수 있는 지원체계를 함께 고려할 수밖에 없다.

 

반면 러시아의 무기 수출은 같은 기간 64% 감소했다. 세계시장 점유율도 6.8% 수준으로 떨어졌다. 전쟁 장기화에 따른 자국 군수 수요와 생산 여건, 국제 제재 등 복합적인 요인이 수출 감소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러시아의 수출 위축이 곧바로 한국을 포함한 경쟁국의 시장 점유율 상승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각국은 미국과 유럽의 기존 공급업체, 신흥 방산 수출국 사이에서 가격과 성능, 납기, 현지화 조건을 비교해 공급자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2021~2025년 미국·프랑스·러시아·독일·중국 등 상위 5개국은 세계 주요 무기 수출의 약 70%를 차지했다. 이는 글로벌 방산시장이 여전히 소수의 주요 공급국에 집중돼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이 수출 확대를 지속하려면 경쟁력 있는 무기체계의 확보와 함께 글로벌 시장에서 장기적인 공급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산업 기반을 강화해야 한다.

사진-방위사업청 공식 블로그

한국 방산, 유럽 NATO 시장에서 존재감 확대

한국 방산의 성과도 이번 통계에서 확인된다. SIPRI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2021~2025년 유럽 NATO 회원국의 주요 무기 수입 가운데 8.6%를 공급해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공급국에 올랐다. 해당 기간 폴란드가 수입한 주요 무기 가운데 한국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47%에 달했다. K2 전차와 K9 자주포 등 한국산 지상무기체계가 유럽의 전력 증강 과정에서 중요한 공급원으로 자리 잡았다는 의미다. 특히 한국 방산은 상대적으로 신속한 납품 능력과 대량생산 기반, 운용국 요구에 맞춘 협력 가능성을 바탕으로 유럽 시장에서 입지를 넓혀 왔다. 긴급한 전력 보강이 필요한 국가들에 납기와 생산능력은 무기 성능만큼 중요한 선택 기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폴란드의 높은 한국산 무기 도입 비중을 유럽 전체 시장의 일반적인 상황으로 확대 해석해서는 안 된다. 유럽 NATO 회원국 전체의 무기 수입 가운데 미국이 차지한 비중은 58%였으며, 한국은 8.6%였다. 한국이 유럽 시장에서 의미 있는 공급국으로 성장했지만, 미국의 압도적인 시장 지배력과 유럽 방산업체들의 경쟁력을 고려하면 추가적인 시장 확대에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앞으로 중요한 것은 수출 계약 규모 자체보다 계약 이후의 이행 능력이다. 현지 생산과 조립, 부품 조달, 정비시설 구축, 기술인력 양성, 성능개량 협력 등이 안정적으로 추진돼야 한다. 유럽 국가들이 자국 방위산업 육성과 공급망 자립을 함께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지 산업과의 협력 수준은 향후 수주 경쟁의 핵심 변수가 될 수 있다.

 

수출 계약을 넘어 지속 가능한 방산 생태계로

첫째, 대형 무기체계 수출을 후속 군수지원과 성능개량 사업으로 연결해야 한다. 초기 계약에서 확보한 시장을 장기적인 운용지원과 추가 수요로 확장할 수 있어야 수출의 지속성이 높아진다. 

둘째, 현지 생산과 기술협력을 단순한 수출 조건이 아닌 산업 협력 전략으로 접근해야 한다. 구매국의 생산 참여 요구에 대응하면서도 핵심 기술과 품질관리 역량을 유지하고, 현지 협력업체를 안정적으로 육성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특히 대형 계약일수록 현지 생산시설 구축과 인력 양성, 부품 공급망 정착에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투입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셋째, 지상무기 중심의 수출 성과를 다른 분야로 확장해야 한다. 방공·미사일, 무인체계, 인공지능(AI), 우주 감시정찰, 통신·지휘통제 등 첨단 기술 분야에서 경쟁력을 높이면 한국 방산의 시장 기반을 넓힐 수 있다. 다만 첨단 분야는 기술 검증과 상호운용성, 보안 인증, 운용시험 등 별도의 진입 장벽이 존재하므로 단기간의 수출 실적보다 장기적인 연구개발과 검증 역량 확보가 중요하다. 

정부 차원의 지원도 수출 금융이나 외교적 협력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생산능력 확대와 핵심 부품의 안정적 조달, 중소·중견 협력업체의 품질관리, 수출 대상국의 인증 및 기술 요구 대응 등을 종합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대기업의 수출 성과가 국내 협력업체의 기술력 향상과 고용, 연구개발 투자로 이어질 수 있도록 산업 생태계 전반을 함께 강화해야 한다.

 

성장 기회는 커졌지만, 시장은 더 치열해졌다

SIPRI의 이번 자료는 한국 방산에 새로운 수주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통계는 아니다. 주요 무기 이전량과 군사비 지출은 서로 다른 지표이며, 무기 이전량은 실제 거래 금액이나 기업별 매출과도 일치하지 않는다. SIPRI의 무기 이전량은 주요 무기의 국제 이전 규모를 비교하기 위한 자체 지표를 활용하므로 이를 일반적인 시장 매출액으로 해석해서도 안 된다. 그럼에도 유럽의 무기 수입 급증과 미국의 수출 지배력 강화, 러시아의 수출 위축은 글로벌 방산시장의 구조적 변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신호다. 한국은 이미 유럽 NATO 시장과 폴란드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확보했다. 이제 관건은 이를 일회성 수출 실적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인 공급망 참여와 산업 경쟁력으로 전환하는 데 있다.

 

세계 방산시장의 성장세가 한국 기업의 성장으로 자동 연결되지는 않는다. 생산능력과 납기, 기술력, 현지화, 후속지원이 결합될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경쟁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 유럽의 재무장이 장기적인 국방 투자와 산업 재편으로 이어지는 지금, K-방산이 넘어야 할 다음 단계는 더 많은 무기를 수출하는 것을 넘어 구매국이 장기간 신뢰할 수 있는 방산 파트너로 자리 잡는 것이다.

작성 2026.10.15 09:54 수정 2026.10.15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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